오후의 산책길에서 이웃의 할머니와 마주쳤다. 쓰레기 처리장에 쓰레기봉투를 비우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향해 말을 건넸지만, 귀가 나빠 미처 알아듣지 못한 나는 보청기의 음량을 조절해야 했다. “제가 귀가 좀 나쁜 거 잘 아시지요?”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나보다 열 살은 족히 더 드셨지만 여전히 또렷하게 듣는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그러나 아주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Take it as it comes. Old age doesn’t come alone.” (그러려니 해. 나이 들면 다 찾아오는 거지 뭐.)
그 말이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준비되어 있던 문장처럼 할머니의 입술을 미끄러져 나왔다. 덕담이라기엔 담담했지만 위로처럼 들렸고, 위로는 아니었으나 묘하게 마음을 풀어주는 힘이 있었다. 나이 듦이 가져오는 불편함을 단숨에 정리해주는 문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할머니의 태도는 마치 인생의 이치를 달관한 듯 보였다.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덧붙였다. “눈도 침침하고,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쑤셔. 그래도 살아 있으면 다 겪는 거지. 안 아픈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오히려 먼저 가더라고.”
그 말에 나는 기어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편함도 삶의 일부이고, 통증 또한 존재의 증거라는 뜻일까. 할머니는 자신의 쇠약함을 한탄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집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듯, 세월의 흔적을 투명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할머니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Old age doesn’t come alone.” 그 한 문장 속에는 체념의 빛깔도, 삶의 유머도, 그리고 어떤 단단한 생의 지혜도 함께 들어 있었다.
듣기가 더 어려워진 귀도, 흐릿해진 시력도,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오는 통증도 결국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푸념하기보다는 “와야 할 것이 오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해마다 몸에 새겨지는 주름이나, 예전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관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젊은 시절 우리는 시간이 끝없이 주어진 듯 느끼며, 마치 우리가 시간을 끌고 가는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칼릴 지브란이 ‘예언자’에서 일깨워 주었듯이, 우리는 ‘잴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을 재려고 한다.’
나이 듦은 또한 삶과 죽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이다. 칼릴 지브란은 묻는다. “그대들은 죽음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들 삶의 중심에서 죽음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오랜만에 《예언자》를 펼쳐 훑어보다가 다음 구절들이 시선을 멈추게 했다. ‘그대들의 기쁨이란 것은 가면을 벗은 그대들의 슬픔. 그대들의 웃음이 솟아오르는 그 샘이 때로는 그대들의 눈물로 채워진다. 그러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슬픔이 그대들의 내부로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대들의 기쁨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구절. ‘오늘로 하여금 추억으로써 과거를, 동경으로써 미래를 포옹하게 하라.’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오는 모든 신호들을 과거와 미래를 껴안는 오늘의 지혜로 받아들여야겠다.
(2025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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