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적게 먹는 사람의 변명

삼척감자 2025. 11. 21. 21:41

나는 어려서부터 많이 먹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과식하면 금세 속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밥상 앞에서는 늘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원래 적게 먹는 체질이에요.” 그러면서 음식을 깨작거린다는 말을 들을까봐, 대접하는 사람의 성의를 무시한다고 할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배부르고 등 따신 걸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들은 대체로더 먹으라고 권했다. 사람들은 내가 적게 먹는다고 걱정하거나, 재차 음식을 권하거나, 때로는 나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오해했다. 내 몸은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세상은 늘 따뜻한 마음으로조금 더를 바라는 듯했다.

 

많이 먹지 않는 사람에게 세상은 은근히 눈치가 필요한 무대다. 식탁에 둘러앉으면 어김없이왜 이렇게 조금 먹어?”, “입맛이 없나?”, “속이 안 좋아?”라는 질문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본래 적게 먹는 편이라는 설명은 좀처럼 그들의 우려를 잠재우지 못했다.

 

남들이 접시를 두세 번 채우는 동안, 나는 첫 접시를 깨작거리며 오래도록 먹으니 난처한 일이다. 누군가가 눈치채고 권할 때도 있다. “좀 더 먹어. 이거 정말 맛있어.” 이것은 순수한 친절이지만, 내게는 작은 압박으로 다가온다. 선의를 거절하면 예의 없어 보일까 걱정되고, 억지로라도 먹게 되면 속이 더부룩해지니 문제다.

 

그렇다 보니 뷔페 같은 곳은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남들처럼 몇 번씩 접시를 채우지도 못하면서 똑같은 식대를 내는 일이 늘 아깝게 느껴졌다. 내가 먹은 양만큼만 지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속 편할까.

 

이런 소심한 성향은 오래 전에 고향에서 겪었던 잊지 못할 작은 일에서도 드러났다. 대학 시절, 군 입대 전 신체검사를 받으러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을 때였다. 친척집 몇 곳을 들러 인사하라는 어머니 말씀대로 들른 첫 집에서 이미 푸짐하게 점심을 대접받은 터였다. 배가 부른 채로 다음 집에 방문했고, 이미 식사를 했노라 말씀드렸지만, 그 댁 어르신은 어느새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계셨다.

 

내가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 하고 머뭇거리자 어르신은 결국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제기, 젊은 놈이 고작 국수 한 그릇을 두고…” 그때는 그 상황 자체가 큰 부담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서운함이 아니라 넘치는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것은 음식이 아니라, 어르신의 마음이었다. ‘왔으니 먹고 가라는 정(), 오랜만에 보는 조카에게 건네는 따뜻한 환대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적게 먹어야 속 편한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상황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적게 먹어야 하는 내 몸과, 더 먹으라고 권하는 세상의 마음 사이에서.음식 한 그릇에서 마음을 읽고, 한 숟가락에서도 온기를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적게 먹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문화마다 온도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밥상에서많이 먹어야 건강하다는 정서가 강하다. 때문에 누가 조금만 먹으면 어김없이왜 이렇게 적게 먹어?”, “어디 아파?”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는 분명 관심과 정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때때로 부담이 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개인의 식습관을 비교적 존중하는 편이다. 누군가 음식을 적게 먹어도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가볍게 더 먹기를 권할 뿐이다. 거절하면 더는 권하지 않는다. 타인의 식사량을 지적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익숙한 방식으로배려를 표현한다는 차이일 뿐이다. 다만 적게 먹는 사람에게는 그 배려의 방식이 때로는 편안함이 되고, 때로는 작은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

 

(2025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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