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마르 14, 50-52)
성경 통독을 하며 마르코 복음서에 나오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가 왜 복음서에 등장할까? 전후 사정을 헤아려 보아도 이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우리 주님이 겟세마니에서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다가 잡히신 극적인 사건에서 제자들이 모두 그분을 버리고 달아났는데도 용감하게 그분을 따라간 이 젊은이는 누구일까? 일부 성서학자들은 이 젊은이가 마르코 사도였다고 보기도 한다. 예수님이 끌려가는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 에피소드를 굳이 집어넣은 까닭은 젊은 시절의 마르코 사도 본인의 이야기였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Hugh Barbour, O.Praem 신부도 2017년 ‘Catholic Answers’에 게재한 글에서 그렇게 설명한다.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복음서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낸 것처럼 마르코도 그렇게 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마태오는 그가 세리일 적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얘기를 하고, 루카는 환자의 몸 상태에 관해 의사로서 관심을 보인다.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한 제자라고 수줍게 말한다. 마르코는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겪으실 때 이처럼 다소 거칠고 철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실상,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복음서의 저자로서 소명을 받았다고 본다.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헌신적으로 따랐으며(아마도 에세네파의 동조자였던 듯하다) 겟세마니 동산의 일부가 그녀의 소유였을지도 모른다.
젊은 마르코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 있다가 사실상 자기 집 소유인 동산 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침대보(아마포)를 걸치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이 든 제자들이 달아났는데도 용감하게 그분을 따른 걸 보면 그는 분명히 주님을 마음속으로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 옷을 걸치지 않았기에 그는 예루살렘의 거리로 나가지 못하고 달아났다. 주님은 그를 위해 다른 계획을 마련해 두셨나 보았다.
마르코 복음은 그가 나중에 로마에서 돕게 된 베드로 사도의 증언에 바탕을 두었으나, 달아난 젊은이는 마르코 자기 모습이다. 복음서의 마지막 절에는 그가 직접 목격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내용이 더 자세히 쓰여 있다. 거기에서 그는 여인들이 무덤 안에서 하얗고 긴 겉읏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썼다.
그리스어로 ‘젊은이’라는 표현은 ‘neaniskos’ 인데 이보다 두 장 앞서서 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에 관한 설명에서 사용한 단어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복음서에서 이 단어를 쓴 것은 이렇게 단 두 번밖에 없다. 그분이 무덤 안에서 아마포 수의를 입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때까지 그 젊은이도 그분처럼 하얀 옷을 입고 그분과 같은 무덤에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참고 문서를 몇 가지 찾아보니 이 장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젊은이가 천사였다고 보는 견해와 이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 자신이었을 거라는 견해, 두 가지가 있다. 오래전 일이고 목격자의 증언도 정확히 남아 있지 않으니 그 젊은이가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다.
성경에서 어쩌다 이처럼 다소 황당해 보이는 대목을 대하면 오히려 궁금증은 더 커지고, 그걸 알기 위해 온라인으로 여기저기 조사해 보는 재미도 있으니 성경 통독은 나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은 소일거리가 되기도 한다.
(2022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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