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다윗과 밧 세바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궁금했다. 임금이라는 권력자가 위력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성폭행한 사건’일까, 아니면 목욕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임금을 유혹하여 왕비가 되고 마침내 자식(솔로몬 왕)을 왕위에까지 오르게 한 어느 여인의 신분 상승기일까? 오랫동안 갖고 있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이들은 밧 세바가 계획적으로 임금을 유혹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윗이 죄를 지은 데는 그녀도 일정 부분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은 분명히 다윗을 비난하고 있다. 다윗과 밧 세바의 이야기는 추잡한 유혹에 관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 여인을 건드리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그녀의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하느님께 죄를 지은 왕의 이야기이다.
밧 세바가 다윗을 유혹하지 않았다는 근거 다섯 가지
1. 다윗은 옥상에 있었지만, 밧 세바는 그 근처에 없었다.
고고학적인 증거로 보면, 당시에 목욕이란 몸 위로 물을 끼얹는 방식이며, 개인 집의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그렇게 했다. 만약 왕궁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면, 그는 근처 집의 담으로 둘러싸인 뜰에 있던 밧 세바를 쉽사리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밧 세바가 목욕으로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다윗이 내려다봄으로써 죄를 지은 것이다.
2. 밧 세바는 매달 치루는 정화 의식을 하고 있었다.
성경은 밧 세사가 “부정한 기간이 끝나 자신을 정화하고 있었다.” (2사무 11,4)고 한다. 당시 여인들은 월경 기간과 이후 7일간은 부정하다고 생각했다. 밧 세바는 결코 다윗을 유혹하려 하지 않았다. 다윗이 그녀와 동침한 때는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시기였다. 그녀의 남편이 전쟁터로 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아기를 낳으면 누구나 그 아기의 아버지가 그녀의 남편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간통은 사형에 처한다. 그게 임금에게는 별문제가 안 되지만, 그녀는 불충실한 아내로 인정되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3. 성경은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걸, 성경에서는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보내며 “나와 함께 자요!” 하고 말하였다” (창세 39, 7)라고 아주 분명히 표현한다. 또 “룻의 딸들이 자손을 얻기 위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그와 함께 누웠다.” (창세 19, 30~38)라고 적나라하게 쓰고 있다. 과부가 된 타마르기 자손을 만들기 위해 창녀처럼 옷을 입고 길가에 앉아 시아버지를 유혹하는 장면도 성경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히 드러난다. (창세 38, 13~19) 만약 밧 세바가 고의로 다윗을 유혹하려 했다면, 성경 본문에서는 그리했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4. 다윗이 그들의 만남을 주도했다.
이 이야기에서 다윗이 분명히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밧 세바를 “보고”. 사람을 “보내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고, 심부름꾼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와서, 함께 “잤다.”. 그녀는 거의 성적인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다. 임금은 그녀를 보고, 그녀를 원하고, 그녀를 데려오고, 그녀를 취했다. 다윗의 성욕과 권력이 그 사건을 추진하는 동력이다.
5.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나탄이 다윗을 꾸짖는다.
사무엘 하권 12장에서 비유를 통해 예언자 나탄은 다윗을 엄하게 꾸짖는다. 하느님은 다윗에게 여러 명의 아내와, 재산과 권력을 주셨다. 하지만 다윗은 그게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다윗은 다른 남자의 아내를 빼앗고자 했고,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우리야를 죽였다. 다윗은 간음에 더하여 살인까지 저지름으로써 하느님을 무시했다. 나탄은 다윗을 질책하며 밧 세바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로지 다윗에게만 질책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밧 세바가 다윗에게 저항하거나 거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윗이 성폭행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다윗의 지위나 권력을 고려하면 밧 세바가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게 왜 문제가 될까?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야고 1, 13~15)라는 성경 말씀대로 다윗은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된다. 그리하여 나탄의 예언대로 벌을 받는다. 이 죄로 인해 다윗은 죽지는 않으나, 몇 명의 자식들에게 배신당하고, 자식들은 차마 여기에 옮기기 민망한 패륜을 저지르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우리도 시련을 겪을 수 있다.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명성이나 지위에 따라 우리가 정의로워지는 건 아니다. 정의롭다는 건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다윗의 죄는 우리에게 하느님께 의지하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2023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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