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

Act of God

삼척감자 2023. 2. 14. 06:17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며, 인간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지진, 홍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를 영어로 Act of God(하느님이 하신 일)이라고 한다. 제품 보증서나 보험 계약서에서는 이로 인해 발생한 제품 손상이나 인명 손상 또는 물질적 피해는 제조회사나 보험회사에서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선한 의도에 따라 일어나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수많은 자연현상에는 왜 Act of God(하느님이 하신 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까? 며칠 전 우리 성당의 신부님께 튀르키예 지진 얘기를 하면서 그 까닭을 물어보았더니 불가항력이라는 뜻으로 Act of God(하느님이 하신 일)을 쓰다가 그게 관용어로 굳어버린 겁니다. 일단 그렇게 쓰기 시작해서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 와서 그 표현을 바꾸기도 쉽지 않겠지요. 그리고 하느님이 일부러 그런 자연재해를 일으키시는 것도 아니지요.”라고 대답하며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은 하느님이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느님께서 이런 대화를 들으시면 무척 억울해하실 거다. “너희는 나쁜 자연 현상에만 나를 들먹이냐?”라고. 잘 되면 내가 잘나서 그렇고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그런데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드리기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하느님,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하고 불평하는 나 같은 인간이 많으니 하느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겠다.

 

올해 2월에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지진은 3개 큰 지층 판이 서로 부딪치는 삼중합접 인근에서 발생했다. 과학자들은 난해한 설명과 복잡한 수치를 동원하여 이러한 지진은 지판의 이동에 따라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자연재해라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지역에 구조대를 파견하고 지원금을 보내고 있지만, 늘 그랬듯이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이 참혹한 재해도 잊힐 것이다.

 

20여 년 전에 튀르키예에 일어난 지진도 이번 지진 못지않게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다. 그때에도 지진을 계기로 튀르키예 내에서 부실 공사 문제가 대두되었고 튀르키예 정부는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진으로 인한 건물 손상이나 붕괴는 여전히 엄청난 것으로 드러났으니 자연재해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몇 개 구절을 인용해 본다. (그분이) 땅을 굽어보시니 뒤흔들리고 산들을 건드리시니 연기 내뿜네.” (시편 104, 32)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욥기 9, 6) 이런 구절을 대하면 하느님께서는 징벌적인 의도로, 아니면 어떤 징후를 드러내시기 위해 자연재해를 일으키시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게 아니라 순전히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난 현상이라고 믿지만, 나처럼 우둔한 머리로는 그분의 오묘한 뜻을 알아낼 길이 없다. 그렇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 37)라는 성경 구절도 있던데 이런 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방지해 주시면 참 좋을 텐데. 자연법칙이나 인간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에 일일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끔은 눈 딱 감으시고 죄 없는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지진으로 희생된 분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고, 부상자들이 하루빨리 치유되고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이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기도한다.

 

(2023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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