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아침마다 깨어서는 잠자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기다렸던 듯싶은 걱정거리와 싸우곤 한다. 오늘은 더 놀라운 소식이 있을까? 코비드 19의 확진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을까? 내 가족은 모두 안전하고 건강할까? 그리고 나도 그럴까?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적인 무서운 바이러스가 앗아간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나는 정말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뜰에서는 개똥지빠귀가 미친 짓을 한다. 아침마다 그놈은 우리 유리창에 몸을 부딪친다. 툭. 툭. 툭. 어떨 때는 그 소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마침내 공격을 멈추었는가 했더니 어느새 내 차 옆 거울의 검은 테두리에 하얀 걸 남겨 두었다. 정말 미치겠네. 그래서 “야 이 개 같은 새야, 어떻게 좀 해봐!”라고 새에게 말했다. 하지만 새는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참다 못해서 수의사인 준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이 미친 새를 어쩌면 좋지요?”
준 박사는 “새가 미친 게 아닙니다. 단지 당신 뜰에서 영역을 주장하려는 거지요. 둥지를 만들 때잖아요. 유리창이나 자동차 옆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적이나 경쟁자로 착각하는 거랍니다. 유리창에 커튼을 치고 자동차 옆 거울에 수건을 걸쳐두세요. 그럼 미친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준 박사의 말대로 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개똥지빠귀는 더는 흥분하지 않고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수의사가 한 말은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 새가 자신의 적이라고 착각했던 게 정말로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을까? 나도 그 새처럼 행동한다. 나는 내 걱정거리가 그날의 불확실한 외부의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두려움과 근심은 마음속에 있다. 그것들은 마음속에서 기다린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매우 자주 은총이 머물러야 할 자리,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는 사랑이 분명히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요즈음 나는 깨어서 근심 걱정이 가득한 세상을 맞지만, 나는 또한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 안에서 나를 기다리시던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을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이 많으시고, 저를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
이 어려운 시기에 저와 함께 계시옵소서
—EDWARD GRIN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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