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몸에서 나는 냄새

삼척감자 2023. 5. 12. 21:15

   전쟁을 전후하여 태어난 우리  세대가 어릴 적에는 세숫비누와 빨랫비누의 구분이 없었다. 작은 벽돌만 한 무궁화 표 빨랫비누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목욕탕에 갈 때도 그걸 갖고 가서 온몸을 씻었다.

   작가 강신재의 단편 소설 젊은 느티나무"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에서 그는 대단한 부자 아버지를 두었으니, 그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는 무궁화 표 빨랫비누 냄새가 아니고 외제 세숫비누의 향긋한 냄새였을 것이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끌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문장이 생각난 건 어머니날을 며칠 앞두고 출장 온 큰딸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였다. 지중해식 식당에서 어머니날 축하 요리를 즐기며 외손자와 두 외손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대화는 언제나처럼 열두 살 된 큰 외손녀가 부쩍 자라서 키가 160cm를 훌쩍 넘었다는 얘기, 여덟 살 된 외손자가 책 읽기에 빠져 있다는 얘기, 무슨 짓을 해도 예쁠 때인 네 살 된 작은 외손녀 얘기에 다들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큰딸이 작은 외손녀가 최근에 했다는 말을 옮겼다.

 

   엄마에게서는 달달한 건포도 냄새가 나서 좋아.

   아빠에게서는 신선한 블루베리 냄새가 나.

   언니에게서는 아무 냄새도 안 나.

   오빠에게서는 언제나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나.

   늘 사이좋게 지내는 언니에게서는 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할까? 언니보다 오빠를 더 좋아하는 마음이 그런 식으로 차별화하여 표현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덟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 때문에 언니와 거리를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에게서 나는 냄새로 사랑을 느낀다는 건가, 아니면 가족을 사랑하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를 맡게 된다는 건가? 아무튼 네 살밖에 안 된 아이의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말에서 냄새와 향기라는 단어는 비슷한 듯 해도 달리 쓰인다. 냄새란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며 향기는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중 기분 좋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불쾌한 냄새라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불쾌한 향기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외손녀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표현했다면, 냄새 대신 향기라는 단어로 번역해야 맞을 듯싶다.

 

   지금 나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6월에 두 딸네 가족과 함께 보낼 휴가에서 작은 외손녀를 만나면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어떻게 표현할지 은근히 신경 쓰인다. 나이가 적지 않으니, 젊은이에게서 나는 상큼한 향기는 바라지도 않지만, 노인 냄새나 풍기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는 고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도 각각 다르다. 그렇지만, 그 냄새는 그렇게 향기로운 편은 아닌 것 같다.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향수라는 게 발달하게 되었나 보다.

   나는 향수를 몸에 뿌려 본 적은 없지만, 열심히 몸을 씻어서 되도록 몸에서 냄새가 덜 나게 하려고 애쓴다, 무궁화 표 비누로 목욕하던 시대는 아니니까, 샴푸와 컨디셔너로 머리를 감고, 향기로운 목욕 비누로 구석구석, 발가락 사이까지 열심히 씻고 닦기는 하지만, 노인 냄새가 날까 봐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성경에서는 몸 냄새에 신경 쓰느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려 노력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향내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내입니다.” (2코린 2, 15~16)

 

(2023 5 12)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손자와 외손녀  (1) 2023.07.11
치과병원을 다녀와서  (1) 2023.06.11
내 기억력도 이제는 믿을 게 못 된다  (1) 2023.05.04
형탄절(炯誕節) 아침에  (0) 2023.03.26
동방 박사의 선물  (1) 2023.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