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치과병원을 다녀와서

삼척감자 2023. 6. 11. 22:04

스케일링을 받으러 반년 만에 치과병원을 찾았다. 이 나이 되도록 충치나 잇몸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지만, 몇 년 전에 단단한 음식을 씹다가 이가 깨진 적은 두어 번 있다. 그래도 아직은 쓸만하니 다행이다. 내 단골 치과의사는 한국인인데, 스케일링 정도는 미국인 여성 조수들이 갈 때마다 번갈아 가며 처리해 주고, 의사는 작업이 다 끝난 후 잠깐 들어와서 입안을 대강 훑어보고는 나이에 비해 치아가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깨어진 이빨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뽑으라고 매번 권한다. 그때마다 나는 아직은 별문제 없으니 갈 데까지 가보겠다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돈이 아깝고, 뽑은 후에 있을 후유증이 걱정되기 때문에 그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이다. 과묵한 그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드러내지만, 별 말없이 진료실에서 나간다. 방문할 때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스케일링에 $100이라는 거금을 지불하지만, 이런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쓰린 속을 달랜다.

 

거의 40년 전에 가끔 가족과 함께 가끔 찾던 한국인 치과의사 T 선생은 직접 모든 진료를 해 주었는데, 일 처리가 꼼꼼하고 환자에게는 친절했다. 당시에는 한국인 치과의사가 드물어서 많은 한인이 그 치과를 이용해서 T 선생은 늘 바빴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말이 너무 많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환자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말하기를 즐기는 거로 보였다. 나는 그가 스케일링 기구를 내 입에 집어넣고 작업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입을 한껏 벌려야 했지만, 그는 수다 떠느라고 계속 입을 열고 있었다. 그가 수다 떨기라는 취미 활동에 열중하는 동안 나는  표정이나 손짓으로 그의 말에 대꾸하려니 고역이었다.

 

진료받는 내내 나는 제발 저 입 좀 다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가 진료 중에 하는 말은 치아에 관한 게 아니라 신변잡사나 회사 업무에 관한 잡담이었으니 해도 그만이고 들어도 그만인 대화였다. 아마도 그는 노동요 대신 수다 떨기로 환자는 바뀔 뿐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고달픈 일상을 잊으려는 듯했다. 작업이 끝나면 으레 잇몸과 치아 상태가 기차게 좋습니다. 당신 같은 환자만 있으면 치과 의사들은 밥 먹고 살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감탄하는 체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지 거의 40년이 지나도록 이 때문에 고생해 본 기억이 없으니, 그가 사람을 제대로 보는지는모르겠지만, 이빨 하나는 잘 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치과병원을 다녀오다가 우리 딸들이 어렸을 적에 진료받으러 T 선생을 만난 어느 날 일이 떠올랐다. 당시 대여섯 살 된 큰딸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진료 의자에 앉자, 우리 부부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그가 우리 딸에게 말했다.

샐리(Sally)는요, 아저씨가 이거 해주는 거 참 재미있어해요.” 

샐리는 우리 이웃에 살던 딸의 친구였다. 조금 있다가 그가 또 말했다.’

어때요? 재미있지요?” 딸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 지었다.

진료하는 내내 그는 우리 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었다. 당연히 그날 진료는 별문제없이 원만하게 진행되었고, 우리 부부는 그가 어린 환자를 능숙하게 다루는 게 감탄스러웠다.

 

내가 30대 후반 나이일 적에 T 선생을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아마 지금은 여든 가까이 되어 은퇴하고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을 거다. 가족 모임에서도 거의 혼자서 떠들어서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던 그분은 지금도 그렇게 원기 왕성하게 지내겠지.

 

나이 들어 가며 이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다. 겪어야 할 불편이나 고통은 물론 임플란트라도 받으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서 그런지 일반 의료보험에서는 치과 치료비를 부담해 주지 않아서 별도로 치과 보험을 따로 들어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엄청나서 나 같은 서민은 대개 치과 보험 없이 지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잇몸이 약하기도 하고 엄청난 임플란트 비용이 감당되지 않으니 내가 아는 분들은 대개 틀니를 착용하는데, 그게 참 불편한가 보았다. 아무렴, 틀니가 내 이빨만 할까? 

 

(2023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