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우리 엄마,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어요?

삼척감자 2023. 7. 20. 06:49

가족 휴가를 보내기로 한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호숫가 별장에 도착한 날이었다.

전면이 유리라서 호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식탁에 앉아 큰사위가 준비한 차디찬 화이트 와인을 천천히 마시며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서 책을 읽던 열두 살 된 큰 외손녀가 물었다.

 

엄마가 다닌 대학교가 명문 대학교라면서요?”

그럼. 거기가 네 엄마가 입학 전부터 제일 다니고 싶어하던 대학교였어.”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걱정할 정도였어.”

첼로 연습하는 건 좋아했어요?”

좀 지겨워할 때도 있었지만, 연습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어. 가끔 공부할 시간이 모자란다고 연습을 빼먹으려고 하면 할머니가  야단칠 때도 있기는 했지만…”

피아노는 몇 살에 시작했어요?”

다섯 살이었을 걸.”

 

몇 달 전 큰딸이 뉴저지로 출장 왔을 때 만나 함께 식사하며 아이들 얘기를 나누다가, 큰 외손녀가 엄마가 어린 시절에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 궁금해하며, “엄마, 생각나는 대로 엄마 어릴 적 얘기를 해 줘. 하나도 빼놓지 말고.”라고 말했더라는 게 머리에 떠올랐다.

 

그 아이는 자기 엄마를 닮고 싶은 사람(role model)’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자기 엄마를 존경하며 본받고 싶은 대상으로 여긴다는 게 부러웠다.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실대로만 얘기해도 별문제가 없으니, 외손녀와의 대화는 쉽게 이어지다가 나중에 큰딸이 찬 맥주와 안주를 날라주며 대화가 잠깐 중단되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니?”

ㅇㅇㅇㅇㅇㅇㅇ 요.”

몇 년 전에 읽던 그리스와 로마 신화는 어땠니?”

할아버지, 그거 알아요? 로마 신화와 그리스 신화는 신들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다는걸.”

그럼. 로마 신화에서는 제우스를 주피터, 포세이돈을 넵튠으로 바꿨더라.”

 

그렇게 외손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열심히 살아온 큰딸의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 밤새워 공부하는 딸을 지켜보며 고등학생일 때 벼락치기로 반년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힘들게 대학교에 합격한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부끄러워하곤 했다. 수능시험도 없고, 내신성적도 반영되지 않고 대학교별로 단 한 번 치루는 입학시험으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던 시절이라 소설책만 읽든 게으른 내가 운 좋게 합격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큰딸과 생긴 모습이 비슷하지만, 성격은 많이 다른 작은딸도 큰딸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거쳐, 같은 대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성격 차이만큼이나 다르지만, 둘 다 참 열심히 살고 있다.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는 우리 두 딸 모두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나는 열심히 살아 온 딸들이 자랑스럽다.

 

언젠가 작은딸의 외동아들도 자기 엄마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며 내게 우리 엄마,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어요?”라고 물으면, 큰 외손녀에게 해 준 것과 비슷한 얘기를 해 줄 것이다. 그리고 , 네 엄마가 참 자랑스럽다.”라고 마무리할 것이다.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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