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인공지능에 번역을 맡겨보니

삼척감자 2024. 3. 8. 11:50

   오래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후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적지 않다. 죽음이 생각보다 참 가까이 있고, 언제라도, 내일이라도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내가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었고, 두 딸에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국판으로 400쪽 가까운 분량의 글이 모이면 한 권씩 책으로 묶은 게 여섯 번이다. 당초 뜻한 것과는 달리 딸들의 한국어 독해력이 나의 영문 독해력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없으니 그간 보내 준 책들도 서가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언젠가 큰딸이 내가 쓴 글 중에서 나의 두 딸과 외손녀 그리고 외손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을 골라서 영문으로 번역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글 몇 개를 골라서 내가 우선 영문으로 번역하고 영문학을 전공한 두 딸이 교정을 보는 작업을 해 보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참 힘들었다. 오죽잖은 글을 신통치 않은 영어 실력으로 번역하려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서 아무리 시간이 많은 은퇴 노인이라지만, 그만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에 여섯 번째 책을 묶어서 딸들에게 보냈더니 큰딸이 열두 살 난 외손녀가 외할아버지가 쓴 글에 관심을 보이더라며 또 글 몇 개를 골라서 영문으로 번역해 달라고 졸랐다. 딸보다 더 예쁜 외손녀가 읽고 싶다니 힘들더라도 고된 작업을 해야 하겠지만, 그게 의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그냥 속으로 끙끙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번역 작업을 인공지능에 맡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인공지능인 Bard ChatGPT를 사용해서 많은 정보를 얻으며 그 정보가 상당히 신뢰할 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설마 번역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끙끙거리며 번역이란 걸 내가 직접 하기보다는 일단 시험 삼아 인공지능에 그 일을 맡겨보기로 했다.

 

   한국어로 쓴 내 어릴 적 이야기를 인공지능에 영문으로 번역하라고 시켜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가 전에 끙끙거리며 번역한 것보다 문체가 훨씬 매끄럽고 단어 선택이 놀라웠다. 번역문을 몇 번 훑어보며 사소한 오류를 고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되었다. 번역을 이렇게 손쉽게 할 수 있다니! 정말 거저먹기가 아닌가. 그렇게 해서 인공지능이 80% 정도, 내가 20%로 공동 작업하여 완성한 번역문을 두 딸에게 보냈더니 딸들도 무척 놀라워하며 영문학도인 자신들이 보기에도 번역문에 별로 흠잡을 데가 없더라고 했다.     

 

   그 이후로 나의 어릴 적 이야기 위주로 매주 두어 건의 글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딸들에게 보내고 있는데, 딸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고 있다.”, “아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읽으니 참 재미있다.”라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인공지능이 고맙다.

 

   그동안 영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글이 적지 않고, 한국어를 영문으로 번역한 글도 꽤 된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보니 번역할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힘들어한 게 좀 억울하다. 진작에 인공지능이라는 게 개발되었으면 번역을 쉽게 그리고 수준 높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벌써부터 인공지능의 부작용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할 일을 대체하니 벌써 적지 않은 인원이 감원되었다고 하며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는 급속도로 늘어날 거라는 우울한 전망을 한다. 번역가나 통역가가 사실상 필요 없게 될 거라는 전망으로 한국에서도 제2 외국어 학과가 폐과되거나 학생 정원이 감소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하니 걱정이다. 나처럼 인공지능의 덕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해 보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문명의 발전에 따르는 명암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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