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반이었던 J와 단톡방에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충북 음성 촌놈인 그는 어렸을 때 키가 껑충하게 크고, 늘 얼굴을 찌푸리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경찰서장 출신에, 박사학위 소지자, 그리고 대학교 교수까지. 이 정도면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힐 만하다. 그런 그가 평범하게 살아온, 강원도 삼척 촌놈인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몇 번인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자네가 기억나지 않아 친구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목사라던데 사실인가?”라기에 “목사 친구를 몇 명 둔 건 사실이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다.”라는 말로 답했지만, 어쩌다 나를 유명한 목사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다 있을까?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다른 직업도 아닌 목사로 잘못 알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 인상이 착해 보인다는 거로 내 멋대로 생각했지만, ‘안 착한’ 내가 그리 보인다면 얼굴로 사기를 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분이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내가 Y대 출신인 걸 알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S대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물론 여러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굳이 어느 대학 출신이라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그게 먹고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가까이 지낸 사이라도 상대방의 출신 대학이 어디인지 대개 모르고 지낸다. 나도 그렇게 지내는데 느닷없이 S대 출신으로 오해받고서 어리둥절했다. 혹시 내가 잘 난 체하는 버릇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러길래 무지 똑똑한 사람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S대 출신으로 지레 단정했겠지.
며칠 전에 아무개 씨가 전화로 내가 H씨와 언쟁했는지 물었다. 나는 그와 대화라는 걸 하는 사이도 아닐뿐더러, 그를 오랫동안 본 적도 없다고 대답했지만, 좀 기가 막혔다. 얘기를 들어보니 서로에게 상관이 없는 일을 이리저리 엮어서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몰아가는 듯해서 언짢았다. 이래서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이 아닌 일을 강하게 부정하지 않으면 인정한 걸로 오해받을 수 있고, 터무니없는 말도 두세 사람을 거치면 사실인 양 굳어 버릴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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