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특별한 까닭도 없이 깊이 잠들지 못했더니 피곤했다. 간밤에는 모처럼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다리가 계속 찌릿찌릿한 게 느껴졌다. 비몽사몽 간에 시계를 보니 두 시가 좀 넘은 새벽이었다. 열한 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고작 세 시간 남짓 잔 셈이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전기 충격과도 같은 통증이 계속되어 편히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왼발 뒤꿈치 복판에 온 불청객이었다. 어쩌다 환상통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면 잠을 이루기 어렵다.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무릎에서 절단되었으니 내 왼쪽 다리에서 발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사라진 몸 일부에 생생한 통증을 느끼는 기분은 정말 허깨비에 홀린 것 같다. 그래서 환상통을 영어로 phantom pain이라고 하나 보다.
환상통이 찾아오면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없어진 부분을 긁거나 두드려 줄 수도 없고, 진통제를 먹어 보아도 효과가 없고, 불규칙하게 계속되는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그렇게 새벽에 시작된 통증이 이번에는 오후 세 시쯤에 슬그머니 물러갔으니 열 두어 시간 이상이나 환상통으로 고생한 셈이다.
환상통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그리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당분간 그 손님을 잊고 살기를 바라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오늘 밤에 또 그 손님이 찾아올지 아니면 몇 달 후가 될지 알 수 없다. 의사 말로는 시간이 흐르면 차차 나아져서 그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어질 거라고 하지만, 벌써 11년이 흘렀는데도 가끔 찾아오니 얼마나 더 지나야 잊고 살게 될까?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도 환상통이 아닐까? 다 지난 일이라 잊은 줄 알았는데도 불쑥 생각나서 마음을 아프게 하니 말이다. 미움, 갈등,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가 느닷없이 고개를 내밀고 괴롭힌다.
상처는 아니지만, 이루지 못해서 아쉬운 꿈이나 아름다운 지난 일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면 아픔이 된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해 볼 시간도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약이다.”라고 하고 영어로는 “Time heals all wounds.”라고 흔히 말하지만, 내 몸과 마음의 환상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낫지 않는다.
오늘은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나서 다음 성경 구절이나 묵상해야겠다.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 (시편 147, 3)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묵시 21, 4)
(2016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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