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미국 입국 기념일 아침에

삼척감자 2024. 12. 10. 21:31

43년 전 오늘 김포 공항을 떠나 알래스카 공항에서 한 번 쉬며 지독히도 맛없는 일본 우동을 사 먹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위스키를 연거푸 마시고는 취기가 덜 깬 상태로 밤늦게 JFK 공항에 도착했으니, 내게는 오늘이 미국 입국 기념일이다.

 

나보다 나흘 먼저 입국한 같은 성당 교우와 바로 옆 동네에 살게 되어 입국 동기라 부르며 가까이 지내왔다. 주로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그 댁을 방문해서 준비해 둔 맥주를 마치 맡겨놓은 것인 양 냉장고에서 수없이 꺼내 마셔서 내 술값 대어 주느라 그분이 돈을 모을 수 없었다는 뜬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러다가 오래전 그분이 뉴저지 남부로 이사해서 멀리 떨어져 살다가 6년 전 내가 그 댁 옆 동네로 이사 와서 다시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으니 입국 동기의 인연은 질기기도 하다.

 

나흘 전 그분의 제의로 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입국 기념일을 서로 축하하면서 옛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나는 30대 초반 그분은 40대 초반에 처음 만났는데, 세월은 빨리도 흘러 지금은 나는 70대 중반, 그분은 80대 중반이 되어 나는 외손을 여럿 두고, 그분은 증손까지 둔 노인네가 되어 버렸다. 그분의 두 아들과 나의 두 딸의 나이를 확인해 보니 우리가 미국 올 때의 나이보다 열 살 이상 많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간 이루어 놓은 게 별로 없지만. 지금 우리 나이에 건강하기만 해도 그게 어딘가? 나는  나이 들면 다들 복용한다는 당뇨, 고혈압 그리고 콜레스테롤약도 먹지 않고, 그분은 아직 이팔 청춘이라고 해도 될 만큼 활기차게 지내시니 그만하면 주님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복을 주신 셈이다.

 

살다 보니 미국에서 보낸 시간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길어졌다. 태어나고 자란 모국에 입은 은혜야 두말할 나위 없이 크지만, 돌이켜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에 신세 진 것도 헤아릴 수 없다. 교통사고 후에 엄청난 의료 비용도 지원받았고, 두 딸의 학자금도 전액을 후원받았지만, 내가 미국에 기여한 거라고는 인구 몇 명 더해준 것밖에 없으니 좀 민망하기는 하다.

 

오늘 저녁에는 아무래도 술 한 잔 하며 미국 입국일을 기념해야 하겠다.

음주가 1절은 막걸리, 막걸리 우리나라 술.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술, , 을 부르며 며칠 전에 사 둔 월매막걸리를 한 통 마시고, 음주가 2절은 포도주, 포도주, 캘리포니아 술, , 을 부르며 레드 와인을 여러 잔 마셔야겠다. 요즘 들어 술이 부쩍 는 마님이 술 비우는 걸 도와 줄 테니 음주가 2절까지 무난하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술을 많이 마셔서 3절을 부르게 된다면 America the Beautiful을 불러야 하겠다. “O beautiful for spacious skies,/For amber waves of grain,/For purple mountain majesties/Above the fruited plain!/America! America!/God shed His grace on thee/And crown thy good with brotherhood/From sea to shining sea!” (후략)

 

(2024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