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달걀값이 왜 그렇게 올랐을까?

삼척감자 2025. 2. 20. 23:19

며칠 전 동네 대형 식품점 코스트코에 들렀더니 달걀이나 우유 등의 유제품을 쌓아두고 팔던 냉장실에 달걀이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주에도 거기서 달걀을 살 수 없어서 집 근처 중국 식품점에서 12개 들이 한 판을 샀는데, 또 그렇게 해야 하나 보다. 그런데 거기에 달걀이 남아 있을까? 어저께 아침 지역 신문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에 코스트코가 문을 열자마자 미리 기다리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단 8분 만에 달걀이 모두 팔려버렸다고 하니 달걀 부족 상태가 심각한가 보다.

 

달걀 가격은 미국 전역에서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식품점은 사재기로 인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많은 지역의 진열대가 비어 있다고 한다. 미국 전역의 달걀 가격은 공급망 붕괴,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새로운 규제(, Free Cage Rule)변화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급등했으며 이런 문제가 해소되려면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할 거라고 한다.

 

12개 들이 계란 한 판에 2달러 정도의 가격에 익숙해져 있던 소비자들은 최근 몇 달 동안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른 것을 보게 되었다. 연방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2024 12월에 대형 A등급 달걀 12개의 평균 가격은 전월 대비 14% 상승한 4.15달러를 기록했다. 일부 소비자는 한 판당 8달러라는 높은 가격에 사기도 하며, 많은 식료품점에서 계란 판매 개수를 제한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녹두나 두부 또는 우유 등으로 만든 달걀 대체품을 여러 가지 소개하고 있지만, 아무리 읽어 봐도 달걀 맛을 대강 흉내만 낸 것일 뿐 진짜 달걀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 그런 제품을 사 먹어볼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어릴 적에는 다들 가난해서 달걀을 열 개들이 꾸러미로 사 먹을 수 있는 집이 흔치 않았다. 그런대로 먹고살 만했던 우리 집만 해도 여덟이나 되는 식구가 한 개씩 고루 달걀을 먹는 식사란 꿈도 꿀 수 없었다. 소풍 갈 때나 삶은 달걀 한두 개를 소금과 함께 종이에 싸서 들고 갈 뿐 점심으로 달걀부침을 싸 오는 건 부잣집 아이들이나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예전에 아일랜드가 한국 못지않게 가난하게 살 적에도 달걀이란 쉽게 대할 수 있는 음식 재료가 아니었던 듯싶다. ‘안젤라의 재(Angela’s Ashes’)’라는 소설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영국에 취업하러 간 아버지가 첫 월급을 보내주면 다가오는 주일 아침에 식구마다 달걀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근사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노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주인공은 기쁨에 차서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 들었지? 주일 아침에 달걀 한 개씩 먹을 거란다. 오 하느님. 나는 달걀 먹을 줄 안답니다. 한쪽의 껍데기를 톡톡 쳐서, 가볍게 깨. 숟가락으로 껍질 안의 달걀을 살살 들어 올려. 그리고 녹인 버터와 소금을 노른자 쪽으로 밀어 넣어. 천천히 아주 조금씩 퍼먹을 거야. 입에 버터와 소금을 조금씩 넣어. 오 하늘에 계신 하느님. 하늘에 맛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버터 넣고 소금 친 달걀 맛이겠지요?” 나는 여태까지 본 글 중에서 달걀에 대한 갈망을 이처럼 절실하게 드러낸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슬프게도 무책임하고 무능한 그의 아버지는 어쩌다 돈을 벌어도 술 마시느라 몽땅 다 써버려서 주인공의 소박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달걀은 매우 값싼 식재료다. 나는 식품점에 가면 으레 달걀을 스물네 개들이 한 판씩 사 오면서도 값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가 아니라 달걀값이 워낙 싸서 값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다. 아마 한 판에 $5쯤 되려나? 그러면 25센트짜리 동전 한 개로 달걀 한 개를 사고도 거슬러 받을 수 있으니 정말 싸기는 싸다.

 

오늘 아침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달걀이 달랑 두 개만 남아 있다. 두 개 모두 삶아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그 도안 귀한 음식을 흔하게 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건너 중국 식품점에 들러서 달걀을 좀 사야 하겠다. 거기에 달걀이 없으면 다른 식품점에 들러야 하나? 아니면 달걀 사기를 포기하고 돼지 고기나 사야 할까 보다. 그 흔한 달걀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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