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 코헬렛(전도서)과 희망가 사이에서
구약성경의 코헬렛(전도서)을 읽다 보면, 오래된 가요 희망가가 떠오른다.
서로 전혀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태어난 이 두 작품은 놀랍게도 ‘삶의 허무함’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라는 깊은 공통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희망가의 가사는 제목과는 달리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라는 구절처럼, 인생을 덧없는 봄날의 꿈에 비유하며 세속적 욕망의 무의미함을 강조한다.
코헬렛 역시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 2)라고 반복하며, 세상의 모든 수고와 성취가 결국 헛됨을 역설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희망가는 부귀영화, 주색잡기, 담소화락 등 세속적 즐거움이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자조적으로 묻는다. 그러면서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던 시대의 염원을 담아, 가사 내용과는 반대로 제목을 ‘절망가;가 아니라 ‘희망가’라 붙였을 거라 짐작된다.
코헬렛도 마찬가지다. 지혜, 쾌락, 부, 권력 등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코헬 12, 13)라며 인생의 본질적인 지향점을 제시하며, 허무 너머의 희망을 바라보게 한다.
젊은 시절엔 늘 하루가 짧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터의 걱정, 자식들의 미래, 아직 끝내지 못한 생각들로 마음은 복잡했다. 그럼에도 잠자리는 편안했고, 뒤척이지 않았다.
그땐 그게 삶의 방식이라 여겼다. 열심히 움직이고, 걱정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다. 시간은 많아졌고, 할 일은 별로 없다. 세상은 나를 천천히 풀어주었다.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하루는 길지만,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 세속적인 걱정거리도, 내가 나서야 할 일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은 왠지 편안하지 않다. 밤이면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 긴 밤을 보내다 보면, 코헬렛의 한 구절이 불현듯 마음을 건드린다.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코헬 2, 23) 이 구절이 이토록 가슴에 와닿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덧 여든이 가까운 나이,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 10)라는 구절을 읽으면 참 허무해 진다.
나는 늙을 때까 쉬지 않고 살아왔다. 무언가를 이루려 하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는 조금씩 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더는 세상을 붙들지 않고, 조용히 하루를 받아들이며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삶이란 결국, 조금씩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마음이 쉬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그것이 나이 들어서 받는 은혜일지도 모른다.
(2025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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