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AI 관련 세미나에 다녀와서 요약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걸 읽고 오랜만에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수많은 내용 중 한 강사의 짧은 인용문이 유독 마음에 걸려, 결국 성경책을 꺼내 창세기 첫 장을 여러 번 읽게 되었다.
“The reason God was able to create the world in seven days is that he didn't have to worry about the installed base.”— Enzo Torresi
하느님이 단 일주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기적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토레시의 말처럼, “하느님이 세상을 일주일 만에 창조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깔려 있는 기반, 즉 인프라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참 절묘하게 들렸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 때 늘 기반 시설을 다지고, 자재를 준비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무 기반도 없는 곳에서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존재하게 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처럼, 그분의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일으키는 전능함의 본질을 보여준다. 인간의 노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그 창조의 과정은 놀라울 만큼 체계적이고 질서정연했다. 먼저 공간을 마련하고 (1~3일), 그 공간을 채워 넣는 (4~6일) 구조는 완벽한 설계도를 따라 진행된 프로젝트 같았다.
첫째 날엔 빛을 창조해 시간과 에너지를 세우고, 둘째 날엔 하늘과 물을 나누어 공간을 만들었다. 셋째 날엔 땅과 바다를 정리해 생명의 터전을 마련하셨다. 이어 넷째 날에는 해와 달을, 다섯째 날엔 새와 물고기를, 여섯째 날엔 짐승과 인간을 더해 세상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일곱째 날, “보시니 좋았다”는 평가와 함께 쉬셨다.
하느님의 창조는 완벽한 설계와 실행이 동시에 이루어진 선언이었다. 우리는 늘 이미 존재하는 인프라 위에서 무언가를 만들지만, 하느님은 그 인프라 자체를 창조하신 분이다. 그분의 질서와 효율은 우리가 어떤 일을 설계하고 관리하든 본받을 만한 완전한 모범처럼 느껴진다.
문득, “천지 창조 이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 2)
빛도, 시간도, 공간도 아직 존재하지 않던 그때, 세상은 오직 하느님의 창조를 기다리는 ‘가능성의 어둠’ 속에 있었다. 이 장면은 과학이 말하는 우주의 시작, 즉 약 138억 년 전의 빅뱅(Big Bang)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과학자들이 “그 이전은 없다. 시간 자체가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듯, 창조 이전의 세계는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적인 영역이었을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창조는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한 작업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 자체’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딸의 세미나 노트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 창세기는, 나에게 가장 완벽한 설계와 창조의 원형을 일깨워주었다.
(202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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