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얼굴로 출신 국가 맞히기

삼척감자 2025. 12. 8. 21:58

우리 콘도미니엄에는 80세대가 산다. 콘도 소유주는 주류에 속하는 백인이 대다수지만 그 사이사이에 중국, 대만, 인도, 이집트, 튀르키예, 핀란드, 브라질, 슬로바키아출신들, 이름만 읊어도 입이 바빠질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한국인은 우리 부부뿐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외모로 출신 국가를 맞히는 게 과연 가능한가?
내 생각에는 그게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길거리에서 냄새만 맡고 요리의 재료를 맞히는 것보다 어렵다.

 

사람들은 한중일 3국인은 그나마 구별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말한다. 한국인은 광대와 턱선이 반듯하고, 일본인은 얼굴이 동그랗고, 중국인은너무 다양해서 설명이 어렵다그러면서 어떤 이는 행동으로 구분하라고 한다. 행동에 절제가 있고 조심스러워하면 일본인, 억양이 롤러코스터를 타면 중국인이라고. 하지만 그런 방식이라면 나는 아침엔 일본인, 점심엔 중국인, 저녁엔 한국인이 된다.

 

얼마 전에는 우리 이웃 한 분을 보고 지레짐잠했다가 또 잘못 짚었다. 단정하고 걸음도 차분한 호리호리한 남자라, 일본 분이구나. 아니면 한국?” 하고 혼자 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만 출신 은퇴 목사였다. 그 순간 나는 내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사실 나도 늘 변신 중이다. 예전 몸무게가 가벼웠을 때는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지금은 살이 조금 붙었다고 중국인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드물게는 베트남인으로도. 체중계 숫자에 따라 국적이 바뀌는 사람도 흔치 않을 텐데, 나는 그 드문 경우다.

 

우리 이웃에 사는 나탈리는 또 다른 깨달음을 줬다. 브라질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매스컴에 등장하는 늘씬한 모델을 떠올렸는데, 직접 본 그녀는 한국 여성의 평균치보다 키가 작고 포동포동하다. 핀란드 출신 리사는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늘씬한 북유럽 미녀와는 거리가 있다. 핀란드 출신이라고 다 기상캐스터처럼 생길 리가 없다는 사실을 또 배웠다.

 

체육관에서 자주 보는 줄리는 더 충격적이었다. 영락없는 한국 젊은 여성 같아서 어느 순간어느 동네에 사세요?” 같은 한국식 질문이 입안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말레이시아 출신이라니. 지금도 그녀만 보면 한국어로안녕하세요!”가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미리 입속으로 영어를 준비해 둔다.

 

결국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았다. 출신 국가는 이민 문서에나 적혀 있을 뿐, 얼굴 속에 적혀 있지 않다는 것. 국적 맞히기는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괜히 틀리면 민망하고, 맞으면 기분 좋아서 또 도전했다가 결국 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생각한다. “출신 국가는 알아서 무엇 하나. 좋은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출신 국가 맞히기만큼이나 어려운 건 이름 외우기다.

 

(2025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