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시계 바늘을 돌리는 날

삼척감자 2025. 11. 3. 09:09

일 년에 두 번, 시계를 조정하는 날이 왔다. 정식 명칭은일광 절약 시간(Daylight Saving Time)’이지만, 우리는 더 친근하게썸머 타임(Summer Time)’이라 부른다. 하와이와 애리조나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는 3월 두 번째 일요일 새벽 2시에 시계가 한 시간 앞으로 달려가고, 11월 첫 번째 일요일 같은 시각에는 천천히 한 시간 뒤로 돌아간다.

 

나는 늘 썸머 타임이 시작되거나 해제되는 날 전날 밤, 조심스레 시계 바늘을 옮긴다. 휴대폰과 컴퓨터는 알아서 시간을 바꾸지만, 문제는 집 안 구석구석 잠들어 있는 아날로그 시계들이다. 벽에 걸린 시계, 전자레인지 위의 작은 디지털 시계, 침실과 욕실의 탁상시계까지. 평소에는 생각 없이 장식품처럼 여기던 이들이 오늘만큼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나하나 바늘을 맞추며 세어 보니 모두 일곱 개나 된다.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시계가 숨어 있었나 싶어 놀라곤 한다.

 

시계를 맞추는 짜증스러운 작업을 하며 문득 생각한다. 인간의 손으로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시간이란 결코 우리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 게 아닌가. 썸머 타임이라는 제도로 시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미국에서 썸머 타임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연료와 전력을 절약하기 위해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었고, 1918년에 법제화되었다. 낮 시간이 늘어나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여가가 늘어나며, 경제가 조금 더 살아나고, 범죄를 줄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생체 리듬 교란, 생산성 저하, 행정적 번거로움 등의 문제도 있다. 나처럼 느린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장단점이 피부에 닿지 않는다. 시간은 늘 흘러가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천천히 숨 쉬며 살아갈 뿐이다.

 

바늘을 돌리는 동안 깨닫는다. 시간은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시계를 조작해도 해는 여전히 자연의 법칙에 따라 떠오르고, 계절은 어김없이 다음 장을 펼친다. 어쩌면 우리가 애써 조절하려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향한 우리의 불안인지도 모른다.

 

모든 시계를 맞춘 후, 손에는 작은 피로감과 함께 묘한 해방감이 남는다. 잠시나마 시계를 잊고, 바쁘지 않은 일상의 흐름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안도감.

 

이 번거로운 의식이 내게 남긴 것은 결국 시간의 소중함과 느린 삶의 필요성이다. 바늘을 돌리며 잠시 속도를 늦춰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 바로 오늘이다. 그리고 문득, 썸머 타임을 선택하지 않고도 자연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는 애리조나와 하와이처럼, 우리는 어쩌면 시간을 억지로 조절하려 애쓰기보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5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