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반가움보다 먼저 걱정이 앞선다. 흰 눈이 차 위와 차 둘레에 차곡차곡 쌓일 모습을 떠올리면, 그것을 치워야 할 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눈이 제법 내렸다. 오전 내내 눈이 이어질 거라는 말에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온다. 사람을 부르기에는 애매한 양이고, 이런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선뜻 나설 이도 드물다.
의족을 낀 다리로 제설 작업을 한다는 건 늘 조심스러운 일이다. 한 손에는 클러치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제설 도구를 쥔 채 넘어지지 않으려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한 손으로만 눈을 치다 보면 숨이 가빠지고, 차 안에 잠시 앉아 쉬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서는 일이 반복된다. 나이 들어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아내에게 이 일을 맡길 수는 없어, 아침에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말없이 집을 나섰다.
차 위에 쌓인 눈을 기우뚱거리며 치우고 있는데 제설차가 몇 번 지나갔다. 그때마다 운전기사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거의 다 치웠을 즈음,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도와주겠다며 나왔다. 아내가 차 뒷바퀴 근처의 눈을 삽으로 퍼내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제설차가 멈췄다. 젊은 운전기사는 말없이 내려와 힘들이지 않고 남은 눈을 금세 치워 주었다.
차 주변이 말끔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기온은 무척 낮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금 따뜻해진 듯했다. 눈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이렇게 뜻밖의 손길을 남기고 가기도 한다는 걸 오늘 아침에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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