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눈 내린 아침의 작은 도움

삼척감자 2025. 12. 15. 12:11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반가움보다 먼저 걱정이 앞선다. 눈이 위와 둘레에 차곡차곡 쌓일 모습을 떠올리면, 그것을 치워야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침에 눈을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눈이 제법 내렸다. 오전 내내 눈이 이어질 거라는 말에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온다. 사람을 부르기에는 애매한 양이고, 이런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선뜻 나설 이도 드물다.

 

의족을 다리로 제설 작업을 한다는 조심스러운 일이다. 손에는 클러치를 짚고, 다른 손으로 제설 도구를 넘어지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운다. 손으로만 눈을 치다 보면 숨이 가빠지고, 안에 잠시 앉아 쉬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서는 일이 반복된다. 나이 들어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아내에게 일을 맡길 수는 없어, 아침에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말없이 집을 나섰다.

 

위에 쌓인 눈을 기우뚱거리며 치우고 있는데 제설차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운전기사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거의 치웠을 즈음,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도와주겠다며 나왔다. 아내가 뒷바퀴 근처의 눈을 삽으로 퍼내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제설차가 멈췄다. 젊은 운전기사는 말없이 내려와 힘들이지 않고 남은 눈을 금세 치워 주었다.

 

주변이 말끔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기온은 무척 낮았지만,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금 따뜻해진 듯했다. 눈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이렇게 뜻밖의 손길을 남기고 가기도 한다는 오늘 아침에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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