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3

조앤 할머니

우리 이웃에 살던 조앤 할머니는 올해로 여든이셨다. 얼굴만 봐도 까다롭게 생긴 데다, 성격도 급하고 성마른 편이었다. 우리가 몇 년 전 이사 왔을 때부터 사소한 일로 텃세를 부리려 들었다. 쓰레기 처리나 화단에 꽃 심는 문제 같은 사소한 일에 잔소리를 하거나, 규정을 어겼다며 관리인에게 일러바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바싹 마른 몸에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로 봐선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고, 굳이 맞대응하기보다는 그냥 웃어넘기며 지내곤 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이웃과 거의 교류가 없었고, 식료품을 사러 나오는 정도 외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어쩌다 마주쳐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주차된 차만 그대로 있고, 할머니의 모습이 전혀 보이..

미국 생활 2025.04.17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이베이에서 중고로 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한 지 꽤 됐는데, 이상하게도 책갈피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세 권으로 된 책 전체 분량이 1,500쪽쯤 되니 만만한 분량은 아닌데, 책갈피가 좀처럼 앞으로 가지 않으니 이걸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제1권 절반쯤 읽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아직도 주요 등장인물 이름이 헷갈리니, 이름 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치는 느낌이다.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구조가 복잡하다. 우리처럼 이름이 두세 글자로 끝나는 게 아니다. 보통 이름 + 부칭 + 성,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여기서 ‘부칭’이란, 누구의 아들이나 딸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 이름이 이반이면, 아들은 ‘이바노비치’, 딸은 ‘이바..

이것저것 2025.04.10

할아버지는 외계인

LA에 사는 외손자 생일 축하 카드를 보냈다. 썩 잘 그린 카드라서 놀랐고, 그런 멋진 카드를 만들게 한 작은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큰딸네 아들과 두 딸은 영상 통화로 “Happy Birthday, 할아버지!”라고 축하 인사를 한 다음에 한두 마디 안부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화면에서 사라지는 게 강제 동원된 기색이 역력했다. 어릴 적에는 어쩌다 방문하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하던 외손녀와 외손자는 대개 여섯 살 전후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외계인 보듯 하기 시작했다. 두 딸의 가족 모두 우리와 멀리 떨어져 살아서 몇 년에 한 번 정도 보게 되고 보이지 않는 언어 장벽도 있으니,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렇게 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까이 지내는 분들과의 정기 모임이 이번에는 마침 내 생일..

가족 이야기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