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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삼척감자 2023. 3. 19. 10:58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책들을 열심히 보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였다.  고등학교 동기동창 인터넷 카페에 손oo군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책 열다섯 권 분량을 한 권으로 요약하여 올리고 있었다. 열다섯 권 중 1, 2권만 읽고는 방대한 분량을 모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완독을 포기한 내게는 쉽게 로마 역사를 훑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매번 적당한 분량으로 올리는 그의 글이 쉽게 대할 수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요약본을 세 번 읽으며 역사를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국사와 세계 역사를 공부했고, 대학교 때는 중국 역사를 잠깐 접했지만, 세월이 흐르니 대부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은퇴하고 나니 남는 게 시간인데 이참에 역사 공부나 하자고 마음먹고 이베이(eBay)를 통해 중고 역사서와 역사 소설을 사 모아서 시간을 내서 읽고 있다. 그렇게 해서 새로 구한 것들이 한국사, 삼국지연의(이문열 평역), 그리스 신화와 역사, 로마인 이야기,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소설인 잃어버린 왕국(최인호 작가) 등이다.

 

역사와 신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역사는 믿을만하고 신화는 믿을 수 없을까? 그리스, 이탈리아 역사서를 훑어보고 한국 역사를 다시 공부해 보니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작품 산하에 자주 등장하는 격언,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褪於日光則爲歷史, 染於月色則爲神話).”에 공감하게 된다. 과연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분명한 걸까?

 

황당무계한 것 같은 민족 신화가 오래 기억되는 건 그게 원시 국가의 성립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역사 기록에도 수많은 오류, 과장 또는 누락된 사실이 있다고 그걸 무시하거나 버려야 하나? 역사는 어차피 승자의 기록이고,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리 기록되기 때문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신화는 허구이고 역사는 사실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과장이 심하고 고증이 잘못된 것도 적지 않지만, 그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진수가 기록한 정사 삼국지도 오류가 적지 않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에 관한 우리 기록은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중국의 기록을 바탕으로 유추해석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패를 안긴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에 관한 기록은 왜곡될 수밖에 없는데, 이 두 영웅과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배운)안시성주의 개인사는 물론 정확한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을지문덕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조차 그분의 출생지와 가문의 계보 등이 불확실해서 알 수 없다고 쓰여 있어서 중국 기록이라도 참고하여 행간을 더듬어 찾아야 하니 역사는 진실의 기록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로마 역사를 공부하며 새로 알게 된 두 인물이 있다. 베르킨게토릭스와 아틸라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보는 관점에 따라 사뭇 다르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아직 부족제에 머물러있던 켈트족 연합하려 했던 위대한 영웅으로서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분열되어 통일된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한 각개 격파당하던 켈트족을 통합해서 로마에 저항하려 했으나 부족제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패배한 인물이다. 그는 카이사르와 로마에게는 반항적인 이민족 왕이었지만, 켈트족의 후계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등에서는 애국자이자 민족을 위해 투쟁한 인물로 보기도 한다.

 

로마인들과 게르만족에게 아틸라와 그가 이끄는 훈족은 가히 공포이자 신의 심판이었다. 이전의 유럽에서는 그토록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던 족속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의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헝가리에서 아틸라는 국가적 영웅이며, 튀르키예와 몽골에서도 그를 영웅으로 추앙한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읽기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고 50여 년이 흐르니 주요 인물들의 이름도 아물아물한다. 하지만 소설 제일 앞 부분에 나오는 왕은 역사의 노예다.”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다.”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번에 역사 공부를 다시 하며 아무리 위대한 왕이나 영웅일지라도 역사의 큰 흐름은 바꿀 수 없고 결국 모든 건 하느님 뜻에 달렸다는 걸 새삼 느끼며, 전쟁과 평화를 통해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은 결국 이 두 문장에 압축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년 동안 역사 공부를 하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계속 떠올랐다.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며 과거 우리 조상들이 저지른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텐데, 조국의 정치판은 늘 어수선하기만 하다.

 

(2023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