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대화에서 피해야 할 주제로 손꼽는 건 정치, 종교, 수입, 외모, 뒷담화, 심한 농담…등인데, 이 중에서도 정치와 종교를 첫째와 둘째로 꼽는 건 이들 주제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수 있는 데다가 민감하기까지 해서 의견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좋은 대화 주제로는 날씨, 취미, 스포츠, 음식과 요리, 여행…등이 손꼽히고 있다.
미국인들은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의 동정은 미주알고주알 보도하지만, 정치인들에 관한 보도는 그리 많지 않다. 보도 매체에 따라 지극히 편향된 보도를 해도 그걸 그리 문제 삼지는 않는 듯하다. 매년 한두 차례 실시하는 지역 투표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인지 투표율은 지극히 낮다. 4년마다 실시하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상원, 하원, 주지사 선거의 투표율은 조금 높지만, 한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는 안다. 그러나 부통령의 이름은 아물아물하고, 뉴저지 주지사, 뉴저지주를 대표하는 상원 의원 두 명, 우리 지역의 시장이나 하원 의원 이름은 전혀 모른다. 아마도 대부분의 미국인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다들 정치에 관심을 그리 두지 않아도 나라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 같다. 격양가(擊壌歌)의 제력어아하유재(帝力於我何有哉 황제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글귀처럼 국민들이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평안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나라라서 그럴까? 그런 정도라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인은 한국인에 비하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무척 덜한 것 같다. 없는 게 차라리 나을 듯한 수준이 떨어지는 한국의 정치인들 때문에 생기는 지나친 정치적 관심보다는 차라리 있는 듯 없는 듯해서 관심을 별로 두지 않게 하는 미국의 정치가 나을 듯하다.
한국인의 정치의식은 아마도 세계적으로 손꼽힐 것이다. 가족 모임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나뉘어 열띤 논쟁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화하는 일이 잦다고 하고, 사목에 바빠야 할 성직자들까지도 한가롭게 비공인 조직을 만들어서 정치 활동에 열심이고, 어느 모임에서든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 잦다고 하니 말이다. 친교를 나누어야 할 페이스북을 정치 토론장으로 착각하여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의견을 드러내는 분들도 적지 않다.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고국의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마치 고장 난 에어컨디셔너같이 시끄럽기 짝이 없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경제는 선진국인데 정치는 후진국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이래서야 한국의 정치가 고대 그리스의 정치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마크 트웨인이 말하기를 “정치인과 기저귀는 자주 갈아줘야 한다. 오래 두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선거 때면 냄새나는 기저귀를 그냥 두거나 더 냄새나는 기저귀로 바꾸고는 뒤늦게 손가락 탓이나 하는 어리석은 유권자들도 문제다.
그런데 투표권도 없는 한인 동포들도 왜 그리 고국의 정치에 관심이 많을까? 성당 신자들끼리의 모임에서 주(酒)님을 모시며 좋은 분위기에서 주(主)님의 말씀을 나누면 좋을 텐데 쓸데없이 정치 얘기를 끄집어 내 분위기를 격앙시키는 인간이 있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건전한 토론이나 의견 교환이 아니라 감정 대립으로 분위기가 망가지니 제발 그런 자리에서 정치 얘기는 삼가면 좋겠다. 들어봐야 스트레스만 주는 정치 얘기 말고 제발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벽에 대고 말하는 게 더 나을 텐데.
한국인은 왜 정치에 관심이 많을까? 사색 당쟁이나 지역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정치에 무지한 사람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대통령 말고는 정치인들 이름을 전혀 모르고 살게 될 날이 대한민국에도 올 수 있을까?
(2023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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