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도 작품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일본 영화 ‘Tokyo Story’는 20세기 가족 관계를 섬세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일본 서부 지방인 오노미치시에 살던 은퇴한 노부부가 도쿄에 사는 자식들(2남 2녀) 가족과 홀로 된 며느리(2차 세계대전 중 행방불명된 둘째 아들의 처)를 방문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그들을 부담스러워하며 소홀히 대한다. 홀로된 둘째 며느리만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시부모를 모시고 도쿄 관광에 나서며 극진히 모신다. 변해 버린 자식들의 태도에 마음이 상해서 노부부는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아내가 갑자기 위독해지더니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세상을 떠난다. 연락을 받고 온 자식들은 장례식을 마치자 바로 떠나지만, 둘째 며느리는 끝까지 남아 시아버지를 돌본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재혼하여 행복하게 사라고 간곡히 권한다.
2008년도 작품인 독일 영화 ‘Cherry Blossoms’는 ‘Tokyo Story’를 독일식으로 다시 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매우 비슷하다.
노부부가 주인공이며, 장성한 자식들이 하나 같이 갑자기 방문한 부모를 모시는 일에 부담을 느끼며 그들로 인해 자신들의 일상이 방해받자 난감해하며 마지못해 부모와 함께 지낸다. 이 영화에서도 동성애자인 딸의 여성 파트너가 자식들을 대신하여 노부부를 모시고 일본 무용 공연에도 함께 가고 대도시 구경도 시켜준다. 결말 부분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등 의도적으로 일본 영화에서 따온 부분들이 눈에 보인다.
두 영화의 제작 연도가 50여 년이나 차이가 나고, 지역적 배경도 일본과 독일로 서로 다른데도
핵가족의 문제점을 같은 관점에서 보여준 것이 인상 깊었다.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보다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고 시사한다.
‘Tokyo Story’를 오래전에 보았을 때는 그저 그런 영화거니 했는데, 내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과 비슷한 연배가 되어서 다시 보니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다. 나의 두 딸은 40대 초반이며 대기업체의 중견 간부로서 직장 생활이 매우 바쁜 걸 알기에 딸들 집을 방문할 때마다 가능하면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관광이나 쇼핑 등으로 외출할 일이 있으면 택시(우버)로 이동하고, 아내는 식사 준비를 맡고, 나는 옆에서 거들며 딸들이 우리 때문에 마음 쓸 일이 적도록 애쓴다. 그들의 일상이 바빠서 방문한 부모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써 줄 수 없음을 이해하며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어려서 우리 품 안에 있을 때의 딸들과 나이 든 지금의 딸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하던 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집을 떠나고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들의 마음을 그들의 가족이 채워가며 부모의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오랜 사회생활로 의젓해진 딸들을 보면 마음 든든할 뿐이지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게 그리 서운하지는 않다.
영화 ‘Cherry Blossoms’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모두 혼자 남은 아버지를 돌볼 수 없다며 난감해하다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이제 어쩌실 거죠?”
“익숙해져야겠지. 내 걱정은 마라.”
이 대답을 듣고 그들은 안도한다.
영화 ‘Tokyo Story’에서도 아내를 잃은 남자 주인공은 며느리를 떠나보내며 외로움을 홀로 감당하리라 체념한다. 영화에서는 안 나오지만,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을 것이다.
부부와 미혼 자녀만으로 이루어진 핵가족은 장점이 많지만, 단점 또한 적지 않다. 특히 노인 문제는 무시할 수 없다. 자녀들이 모두 떠나서 각자 핵가족을 이루고, 부부 둘만 남아서 늙어가다가 종내에는 홀로 남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그런 가족 제도가 바람직할까? 그렇다고 대가족 제도로 되돌아갈 수도 없지만, 나도 늙어간다고 생각하면 참 서글프다.
(2022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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