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카이사르, 루비콘강을 건너다

삼척감자 2022. 9. 7. 05:12

고등학교 동창생인 최승환 군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요약하여 동창 카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게 작년 이맘때였다. 작년 말에 연재가 끝나자, 아쉬운 마음에 내가 그의 글을 모아서 약간의 교정을 본 다음 두껍고 큰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책을 보는데, 필요할 때는 원저자의 책을 찾아서 자세한 내용을 찾아 읽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카이사르의 루비콘강 도하 장면을 갈리아 전기 중 내전기(內戰記)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저자가 재현한 글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카이사르는 그를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망설임을 떨쳐버리듯 큰소리로 외쳤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 

   ‘장군의 뒤를 따르자!’

   병사들과 일제히 우렁찬 함성으로 응답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말을 달리는 카이사르를 따라 한 덩어리가 되어 루비콘강을 건넜다. 기원전 49112, 카이사르가 506개월 되던 날 아침이었다.”

 

그날 이후 ‘루비콘강을 건너다’나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은 인생에서 큰 결단, 특히 되돌릴 수 없는 결단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 몇 가지를 역사 기록에서 찾아본다.

 

중국의 초한지에서 초나라 패왕 항우가 천하를 거의 제패한 후한나라 유방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촉 지방을 영지로 주고 한중왕으로 임명하지만, 항우는 유방이 중원으로 다시 나와 자신에게 대항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다. 그래서 당시 책사였던 장량은 이런 의심을 풀면서 안전도 도모하자며 잔도(棧道= 험한 벼랑에 선반을 매듯이 만든 길)를 태울 것을 조언했고, 이에 유방은 파촉에 들어간 직후 파촉과 중원을 연결하는 잔도를 태워버린다. 이는 퇴로를 차단해서 배수진을 치고 사생결단의 승부를 결심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고려 말기인 
1388, 명나라와 철령위(鐵嶺衛) 문제를 놓고 분쟁을 벌이던 고려에서, 요동 정벌군을 이끌고 있던 이성계 등의 무인들은 서경에서 국경 지대 압록강의 섬인 위화도까지 19일에 걸려서 북상했다. 그러나 이내 그대로 군대를 돌려 9일 만에 회군(回軍)하고 개경 인근에서 전투를 벌여 고려 중앙군과 최영을 패배시키고 조정을 장악했다. 왕명을 어기고 군 총지휘자가 독단으로 군을 움직인 사실상 쿠데타로, 이후 회군의 수장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 세력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직접 왕에 오르게 된다.

 

1961516일에 박정희 소장이 한강을 건너 군사 정변을 일으킨 사건도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사실과 비교될 수 있겠다.

 

누구나 살아가며 큰 결단, 특히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를 결단을 앞두고는 쉽게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카이사르처럼 ‘나아가자’라고 외치며 결단을 내릴 때도 있겠지만, 머뭇거리다가 나아갈 때를 놓치기도 하고, 아예 나아갈 생각을 접어버릴 때가 많을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회사 생활에서는 일을 저지르기보다는 전례(매뉴얼)에 따라 무난하게 일을 처리하는 편을 택했고, 개인적으로는 루비콘강을 건너는 모험보다는 남들이 다 간다는 넓고 편한 길을 택하곤 했다. 이제 와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외치며 엉뚱한 짓을 저지를 일이야 없겠지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며 사나이 가는 길에 거침이 없음을 보여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삶이 부럽다.

 

(2022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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