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똑똑한 인간들이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라고 말하며 천국에 닿으려고 높은 건축물을 계속 쌓았다. 그 탑이 있던 곳의 이름은 바벨이라고 한다.
그 오만함에 분노한 하느님께서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라 하시며 인간의 말을 제각각으로 만들고 그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어 버렸다고 한다. (창세기 11장 4~9절)
그 이후 언어 수가 자꾸 늘어나서 지금은 세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3,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하느님이 인간의 말을 뒤섞어 놓은 효과는 정말 확실한 것 같다. 세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언어를 사용 인구수를 기준으로 열거하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순이며, 한국어는 7,500만 명이 사용하여 13위에 해당하며, 한국어가 많이 사용되는 나라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5개국이다.
전 세계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4억 8,000만 명이니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국의 공용어는 뭘까? 미국은 따로 연방 차원에서 공용어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식 영어가 사실상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대부분의 미국인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영어 외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도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영어 이외의 언어 중에서 1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스페인어(4천 100만 명), 중국어(350만), 타갈로그어(170만), 월남어(150만), 아랍어(120만) 등 32가지나 되는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110만 명으로서 여섯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
미국에서 영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여 고생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내가 등록한 외국인을 위한 영어 공부 반에서 함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 유럽 출신의 백인들이다. 그들의 모국어가 영어와 뿌리를 같이해서인지 동양인보다는 영어 습득 속도가 빠르기는 해도 나이 들어서 외국어를 배우기란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듯하다.
나의 외손들은 영어만 할 줄 알고,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위들은 한국어를 조금밖에 알아듣지 못하니 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당연히 영어가 공용어가 된다. 그러니 어쩌다 우리 부부와 딸들이 소수 언어인 한국어로 대화할 때는 괜히 그들의 눈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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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우리 부부와 두 딸이 공부한 언어는 한국어, 영어,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이니 이들 언어를 제대로 공부했더라면 서툴더라도 세계 어디에서든 의사소통에 그리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이미 배운 외국어도 대부분 잊어서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목록에 스페인어를 추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 문법이 영어보다 어렵다지만, 발음이 훨씬 쉽고, 사촌뻘 되는 영어 공부를 많이 해 둔 바탕이 있으니 도전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독일어보다 어려울까? 그리고 새 언어를 배우는 게 치매 예방에도 좋다잖아.” 그래서 “Spanish for Dummies(바보들을 위한 스페인어 교본)”이라는 책을 사서 정초에 스페인어 공부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예상대로 스페인어 공부는 영어 공부보다는 쉬워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해력이 아니라 기억력이었다. 아니, 적지 않은 나이였다. 교본을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데 책장을 덮기 무섭게 방금 본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니 그게 문제였다. 공부 시작하고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인칭대명사가 헷갈리니 스페인어 공부는 물 건너갔나 보다. 그래도 기왕 사놓은 책이 아까워서 가끔 뒤적이기는 하지만, 머리에 남는 건 없으니 나이 탓을 하다가, 오래전에 인간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려서 많은 언어가 생기게 한 하느님 탓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내가 이 고생을 사서 한담.
(2020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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