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어린 왕자

삼척감자 2022. 9. 6. 02:51

초등학교 2학년 때(1956)였다. 아침마다 배달되던 조선일보를 받으면 얼른 어린이를 위해 제작된 지면을 읽다가 신문을 기다리던 아버지에게 야단맞곤 했다. “애들이 신문에서 뭐 볼 게 있다고 붙들고 있느냐?”라고. 한글을 깨우치고는 활자로 된 건 무엇이든 읽는 재미에 빠진 내가 아버지 눈치를 보며 신문을 받으면 제일 먼저 보던 게 당시 연재되던 ‘어린 왕자’였다. 뭔가 신기한 이야기로만 생각되었지, 내용을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서 본격적인 독서는 ‘어린 왕자’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때 신문에서 읽은 ‘어린 왕자’의 저자가 누구인지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해도 제목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게 그 유명한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125)에 우연히 조선일보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고는 내가 읽은 ‘어린 왕자’의 저자가 생 텍쥐베리임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작가 생 텍쥐베리(1900~1944)의 ‘어린 왕자’ 국내 최초 소개는 안응렬(1911~2005) 전 한국외대 교수 번역의 조선일보 연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195642일부터 517일까지 44회에 걸쳐 연재된 것으로 이를 묶어 1960년에 ‘어린 왕자’ 번역본이 처음 출간됐다. 국내 대표적 ‘어린 왕자’ 수집가인 김규언(69) 소화병원 원장은 “이번에 조선일보 100주년을 맞아 공개된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라면서 “고인이 되신 안 교수의 자녀인 안철, 안혜란 씨와 함께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어린 왕자의 대강의 줄거리는 어느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동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면서도 풍자적인 내용이 섞여 있는데, 이 때문에 어린 시절에 읽은 느낌과 어른이 되어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나이 일흔이 넘은 지금 읽어 보아도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이 아닌데, 어릴 적에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아침마다 신문에 연재되는 어린 왕자를 기다렸으니, 아마도 읽을거리에 굶주려서 그랬나 보았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읽을거리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으니 어린 왕자본문에 나오는 만약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문장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서 어릴 적에 읽었던 어린 왕자가 바로 생 텍쥐베리의 작품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참 반가웠다.

 

생 텍쥐베리는 프랑스에서 우편물을 항공 수송하는 회사에 다녔고, 2차 세계 대전 중에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1935년에 동료 항법사와 함께 비행하던 중 리비아 사막에 추락하였는데, 기적적으로 목숨은 구했지만, 사막의 열기 때문에 바로 탈수증이 일어났다. 지도가 불확실해서 모래 언덕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었다. 남은 식량은 하루 치밖에 안 되었다. 그들은 신기루를 보았고 환청을 들었는데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졌다고 한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탈수증이 심해져서 땀조차 흐르지 않았다. 넷째 날에 낙타를 타고 지나가던 유목민이 그들을 발견하여 구조했다. 중편 소설 ‘어린 왕자’는 조종사가 사막에 불시착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리비아 사막에서의 체험이 소설의 내용에 일부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1944년에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기로 비행하다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1998 4월 마르세이유 남동쪽 해저에서 그의 이름이 적힌 팔찌가 발견되고 수중 탐사 장비로 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정찰기를 발견하였으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자살설과 독일 비행기에 의한 격추설 등 논란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대로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이끌려 어린 왕자를 만나러 지구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제목만 기억하던 어린 왕자에 대하여 신문 기사를 보니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라는 어린 왕자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은 할아버지인 나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2020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