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아무에게나 그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지 말고

삼척감자 2022. 9. 5. 02:04

우리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임제(林悌)의 시조가 생각난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나니.

   잔() 잡아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은이는 당대의 대문장가로서 명산을 두루 찾던 풍류인이었다. 이 시조는 지은이가 평안도 평사(評事: 6품의 외직 무관)로 부임 도중 개성에 들러 황진이의 무덤에 술잔을 부으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여 읊은 것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임지에 부임도 하기 전에 파직당한 것으로 전해 온다. 이 일이 양반의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논란이 되어 임제는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그런 것에 개의하지 않고 명산을 찾아 다니며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남녀 간의 사건 기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대부 남성들이 기생 첩을 두고 벌인 쟁탈전, 가족 간에 여자를 두고 다툰 패륜,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노비나 승려들과 정을 통한 경우, 도덕군자로 추앙받으며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둘러싼 추문이 왕실의 공식 기록에 수없이 올랐으니 그 당시 양반 가문의 윤리의식이란 게 앞 다르고 뒤 다른 위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온갖 못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양반들이 명기의 무덤 앞에서 시조 한 수를 읊은 풍류남아를 단죄했으니 그들의 이중적인 행태에 실소하게 된다.

 

작년에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조각 공원에 다녀와 거기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마릴린 몬로의 실물 크기 조각상 사진을 올리고 그 밑에 마릴린 누님 보고 싶어요.”라는 댓글을 올렸는데 좀 주책스러운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댓글을 삭제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두었지만, 가톨릭 신자의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고, 물러날 벼슬도 없었기에 그 댓글은 아직도 건재하다.

 

얼마 전에 젊고 잘생긴 가톨릭 신부 둘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날의 주제는 어느 시청자가 올린 독신을 지켜야 하는 신부들은 성욕을 어떻게 해소하나요?”라는 발칙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었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솔직하게 답변하는 그들의 태도가 참 보기 좋았는데, 답변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1. 신학교에서는 열심히 기도하면 성욕을 억제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하느님이 주신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욕이라는 에너지는 아무리 빡세게 기도해도 억제할 수 없더라.

   2. 기도가 통하지 않으면, 격렬한 운동을 통해서 성욕을 억제하라는 신학교의 가르침도 실천해 보았다. 이틀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뛰었지만, 지나친 운동으로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여자 생각이 사라지더라. 이 방법에 따르면 일상생활이 불가능지니 그리 바람직한 건 아닌 것 같다.

   3. 마지막 방법은 자기 위로(自慰)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건데,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더라.

좀 웃픈 내용이기는 했지만, 젊은 신부들이 참 솔직하고 밝은 표정으로 얘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위선적이지 않은 그들의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사랑받는 좋은 사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경에서는 여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 구절이 있다.

나이많은 여자는 어머니처럼, 젊은 여자는 누이처럼, 오로지 순결한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1티모 5, 2)

나이 많은 여자를 어머니처럼 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노력하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여자를 누이처럼, 오로지 순결한 마음으로 대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한두 번 보고 만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만, 남자가 지위가 높고, 여자가 젊고 아름다운 부하라서 매일 대하는 사이라면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인품이 고매하고 잘난 고위층 인사들이 줄줄이 여자 문제로 신세를 망치는 걸 보니 측은하기도 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그들의 위선이 역겹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똑똑하나 덜 아름다운 부하 직원을 채용하면 될 텐데.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지 않던가.

 아무에게나 그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지 말고 여자들과 동석하지 마라.(집회 42, 12)

나도 이 성경 구절을 마음에 담고, 산책길에서 가끔 보게 되는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눈길을 주지 말아야 하겠다. 내 나이 일흔이 넘었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여자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202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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