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방구석 유목민

삼척감자 2022. 9. 4. 03:52

지난겨울 언젠가 밤새 눈 내린 다음 날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지금 온 세상은 음울하고 길은 눈으로 덮여있네”라는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의 가사가 떠올랐다. 언론에서는 매일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니 외출도 최대한 자제하며 지내던 차에 연일 눈까지 내리니 참 답답했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몽골 이야기’라는 걸 보게 되었다. 한 개, 두 개 보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끌려서 수십 개를 찾아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몽골 바람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까지 사서 열심히 읽으며 답답함을 달랬다.

 

유목(nomadism)은 가축을 거느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먹이가 될 풀밭을 찾으며 가축을 기르는 생활 활동을 말한다. 유목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장소에서 가축에게 풀을 뜯게 하다 보면 건조한 초원이나 사막 지대에서는 풀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코비드 때문에 갇혀 사는 나보다는 떠나고 싶을 때 게르를 걷어서 훌쩍 떠날 수 있는 유목민들이 나보다 자유롭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삶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튜브를 보면 볼수록 그들의 고된 삶이 느껴져서 처음에 가졌던 유목 생활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유목 생활은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고되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유목을 하는 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그 소중한 가축들이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유목 생활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는 과거의 영화를 자랑한 몽골이 현대에도 거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300만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방증한다.

 

때로는 노동력(기술 또는 상거래)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현대판 유목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마 전에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노매드랜드(Nomadland)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 펀(Fern)은 한때 네바다주의 작은 마을인 엠파이어에서 남편과 살았다.. 남편은 석고를 캐는 광부였고, 펀은 석고 회사의 인사과에서 일했다. 하지만 남편이 암에 걸려 죽고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며 공장에 수입을 의존하던 엠파이어 시는 그대로 몰락해 버렸고, 결국 홀로 남은 펀은 밴 한 대에 몸을 의지해 떠도는 노매드(유목민)가 된다.

영화는 펀이 차에 실을만한 살림살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창고에 맡긴 뒤 밴을 타고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아직 일할 의지도 충분하고 경력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던 펀은 한 캠핑장에 밴을 세워두고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펀은 아마존 물류센터 일을 그만두고 남쪽으로 떠난다. 이후 펀은 캠프장, 식당, 농장 등에서 일한다. 돈을 빌리러 들른 언니에게 함께 살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한다. 그리고 펀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데이비드의 초대를 받는다. 아들 집에 정착한 그는 펀에게 아들 내외도 허락했으니 자신들과 함께 살자고 권하지만, 펀은 이미 편한 침대에서 자다가 문득 잠이 깨서 다시 밴에서 잠이 들 정도로 노매드 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거리 두기로 어쩔 수 없이 집에 갇혀 지내다시피 해서 그런지 고된 유목민 생활이라지만, 그들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생활이 부럽기도 했다. 영화에서 펀이 말한 다음 대사를 들으니 더욱 그러했다. “내가 이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마지막 작별인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난 여기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아요. 항상 이렇게 얘기하죠 '길에서 만나요. 그리고 그렇게 해요. 그게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때로는 수년이 걸려도 그들을 다시 봅니다.”

 

얼마 전에 몽골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는 오랜 친구 P 씨와 함께 식당에서 중국 음식을 안주 삼아 몽골 얘기를 나누며 위스키를 마셨다. 취기가 오른 그가 거의 40년 전에 우리 가족과 함께 캠핑하러 다니던 얘기를 하며 코로나가 잠잠해 지면 예전처럼 함께 미국에서 캐나다까지 유람 다니자고 제의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나는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지 10여 년 세월이 흘렀고, 그는 몇 년 전 뇌수술을 받고 나서 운전을 못 한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런데 장거리 운전을 누가 하지요? 할아버지 둘은 운전을 못하고, 할머니 둘은 몸이 시원치 않아서 비실거리는데 장거리 운전이 감당이 될까요?”

그랬더니 다들 할 말을 잃고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확실히 초를 쳤다.

“유목민 부러워하지 말고, 이젠 방구석 유목민 놀이나 합시다.”

 

(2021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