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독창성에 관하여

삼척감자 2022. 9. 3. 04:02

고 박창득 몬시뇰은 50년 사제 생활의 대부분을 미국 뉴저지주에서 사목하며 보냈다. 오래 전 그분의 50년 사제 생활을 축하하기 위한 금경축 행사를 준비하며 그분이 쓴 글을 모아서 세 권 정도의 문집을 발행하려는 모임을 여러 차례 가졌다. 수많은 강론 기록과 가톨릭 다이제스트 등의 책에 실린 글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에 그만한 분량의 글을 모으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꾸밈없는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 신자들도 많았기에 그 작업에 별다른 난관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분의 반대에 부딪혀서 문집 발행이 무산되었다. 반대 이유가 이러했다. “내가 많은 글을 쓰기는 했지만, 그 글들은 성경이나 다른 훌륭한 분들의 좋은 글이나 말씀에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나의 독창적인 글이라 볼 수가 없고, 이미 다른 신부님들이 쓰신 좋은 책들이 많이 출판되어 있으니 굳이 제 책을 거기에 더할 이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출판 경비로 제 금경축에 오실 축하객들에게 국수 한 그릇씩 대접해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문집 발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분의 말씀은 많은 신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글쓰기에 여러 자료를 참고한 게 표절도 아닌데 스스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게 성직자의 결벽증으로 생각되었다.

 

과연 다른 이들의 작품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순도 100%짜리 창작물이 있을 수 있을까?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다음 기사를 읽고 독창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논란이 된 이 두 사람은 음악인으로서의 작품성을 떠나 인품이 훌륭한 분들임을 느꼈고 음악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던 나도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일부러 찾아 듣고 싶어졌다.

   

“가수 유희열이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한 가운데, 사카모토 류이치가 20일 입장을 밝혔다. 그는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며 “(유희열 곡은)법적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유희열은 “발표 당시에는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존경하는 음악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는 “나는 내가 만드는 모든 음악에서 독창성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유희열의 새 앨범에 행운을 발며, 그에게 최고를 기원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한 유희열에게 뭐 그럴 수도 있다. 나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사카모토 류이치. 둘 다 매우 솔직하고 마음이 열린 분들로 생각된다. 나는 이들에 관한 기사를 읽고 독창성과 표절의 경계를 명확하게 선을 긋기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복사해서 붙이기 정도로 표절해 놓고는, 나중에 그게 드러나면 뻔뻔스럽게도 우연의 일치라며 우기는 사람들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나는 글쓰기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공학도이지만, 겁 없이 적지 않은 글을 썼다. 지난 10여년 간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게 1,000개가 넘고, 그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묶은 후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 나누어 준 게 여섯 권이나 된다. 글을 쓰며 다른 이들의 좋은 글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고, 긴 글은 요약해서 올리기도 했고, 내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서 올린 적도 많았다. 박몬시뇰님의 잣대로 본다면 내 글들 또한 그런 글들에서 영향을 받았으므로 100% 독창적인 글이라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나처럼 친구들에게 수다 떨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글 쓰는 사람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도 어느 수준에 올라서 글쓴이가 전문가로 인정받을 정도가 되어야 창작성이 어떻고, 문체가 어떻고 하며 도마 위에 오르지, 나 같은 사람이 쓴 글이야 읽고 바로 잊힐 테니까 애당초 그런 걸 문제 삼을 일도 없다.

 

(2022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