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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를 읽고

삼척감자 2022. 9. 3. 03:58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었다. 깨기 직전에 무슨 꿈을 꾸긴 꾸었는데 생각나지 않으니 분명히 개꿈이었을 거다. 나이 드니 새벽에 잠에서 깨면 다시 잠을 이루기 어렵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며칠 전부터 사전을 찾아가며 읽고 있는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노인과 바다를 펼친다. 젊었을 적에 읽어 보았지만, 같은 작품도 나이 들어서 다시 읽으니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노인들은 왜 일찍 깰까? 더욱더 긴 하루를 보내려고 그러는 걸까?” 노인과 바다에서 새벽에 잠이 깬 주인공이 던지는 질문이지만, 나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권위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번역해서 인용해 본다.

   주인공인 쿠바인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그를 도와주던 마놀린이란 소년의 가족은 그에게 노인과 더는 일 하지 말도록 했다. 하지만 소년은 계속해서 노인에게 음식과 미끼를 갖다주며 도왔다. 소년은 산티아고를 존경하고 그에게서 인생의 교훈을 배운다. 산티아고는 자신의 운이 바뀔 거라는 믿음을 갖고, 멀리 멕시코 만류의 깊은 바다로 배를 몰고 가는데 곧 거기서 거대한 청새치를 낚는다. 그는 죽을힘을 다하여 사흘 동안 그 물고기와 대결하며 그의 강함과 위엄과 충실함을 찬미한다. 마침내 그는 낚싯줄을 감아올려 청새치를 배에 묶어 둔다.

   그러나 산티아고의 노고는 허사가 된다. 상어 떼가 묶인 청새치에게 다가오자 산티아고가 그중 몇 마리를 죽였지만, 상어 떼는 청새치를 먹어 치우고 뼈만 남긴다. 부두에 돌아오자 낙담한 산티아고는 집으로 자러 간다. 사람들은 그의 배에 묶인 뼈를 보고는 놀라워한다. 잠을 자며 그는 바닷가에 나타난 사자의 꿈을 꾸었다. 사자들은 황혼 녘에 어린 고양이들처럼 장난쳤는데 그들은 그가 사랑하는 소년처럼 사랑스러웠다.

   걱정하던 마놀린은 산티아고가 살아 있는 걸 보고 안도하며, 두 사람은 조만간 함께 고기 잡으러 가기로 약속한다.

 

이 소설에서는 몇 가지 상징적인 존재가 나온다.

 

   거대한 청새치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만나는 상상적인 상대를 상징한다. 산티아고는 다행히 자신의 능력, 용기, 사랑 그리고 존경심에 가장 걸맞은 상대를 만나서 진심으로 운이 좋다고 느낀다.

   작품에서는 노인과 대결하는 청새치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러자 물고기는 죽을힘을 다하여 퍼덕이며 물 밖으로 높이 솟구치면서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몸을 드러내며 힘과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 모습은 조각배를 탄 노인 위로 마치 공중에 매달린 것 같았다. 그러더니 물속으로 철썩 떨어져 노인과 조각배 위로 온통 물을 흩뿌렸다.” 

 

   어부 산티아고의 꿈에 나오는 사자들이 장난치는 바닷가는 행복한 곳을 나타낸다. 그곳은 그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던 곳이며 사자들이 장난치는 걸 본 건 가장 놀랍고도 기분 좋은 일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 꿈을 대개는 어려울 때 꾼다. 그는 실제로 일어났던 기분 좋았던 일을 꿈에서 보며 평화를 찾는 것이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했던 곳으로 떠난다.

 

   상어 떼는 식욕이 왕성해서 청새치를 거침없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노인의 상대로서, 그들은 청새치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우주의 파괴적인 법칙을 상징하고 구체화하며, 목숨을 걸고 대등한 싸움을 할 때만 이러한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비겁한 포식자이므로, 산티아고는 그들과 싸움에서 영예롭게 승리하지 못한다.

작품을 읽고 나니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가 아니야. 인간은 망가질 수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산티아고 노인의 말이 가장 머리에 남는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나도 잠을 푹 잘 수 있을까? 꿈속에서 어릴 적에 살던 집 앞 산기슭에 가득 핀 야생화나 보면 좋을 텐데.

 

(2020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