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삼척감자 2022. 9. 2. 21:34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보며 이 책의 해설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가 다음과 같은 미국인 무명 블로거의 글을 보았다. 그의 글이 니체의 위버멘쉬(Ubermensch)에 대해 재미있게 요약했기에 아래와 같이 번역해서 소개한다.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인간의 의식이 진전하는 세 단계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낙타는 짐을 운반하는 동물로서, 짐의 무게 때문에 고생한다. 낙타는 자신의 책임감과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사람의 의식을 상징한다. 낙타는 하느님이라는 이름의 자신의 신에게 순종하며 쉬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간다. 그리하여 자신의 헌신을 드러낸다. 만물의 창조주인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는 자신과 타인의 짐을 지고 사막을 지난다. 어느 날 외로운 여정에서 그는 괴로운 노역에 대한 보상을 받고 사자로 바뀐다.

 

사자는 믿음을 버리고 생명의 창조자이며 믿음의 설계자인 신성한 존재에서 벗어난다. 신성한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의 책임과 그에 따르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나 사자에게는 목표가 없다. 사자는 스스로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돈다. 살아갈 목표가 없다면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리하여 사자는 어린아이로 바뀌어 순수해지고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된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여 자신의 의지로 삶을 거룩하게 바꾼다. 그는 신성한 권위나 관습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린아이란 단어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관점,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건 인성이 새로운 존재 영역을 초월해 그 자신이 하느님이 되는 단계이다.

이러한 변화는 위버멘쉬(초인)의 탄생에 필수적이다. 위버멘쉬는 자신의 규율과 덕성에 따라 스스로 가치관과 인생관을 창출하여 선과 악을 넘어서는 삶을 누린다. 니체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리하여 ‘참 나’가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란 책 전체를 통해. 조르바는 세상의 부정에 맞서 확고하게 심판과 정의를 말하는 전통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르바가 하늘나라를 의심하지만, 그는 도덕관이 결여되었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는 인물로 호도되어 있지는 않다. 조르바는 화자(話者)가 여관 여주인을 상대로 한 거짓말-조르바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을 책망하지만, 그녀가 마음 상할까 봐 내키지 않지만, 나이 먹은 그녀와의 결혼에 동의하고, 결혼 직전에 그녀가 죽자 진심으로 슬퍼한다. 영적인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삶과 죽음에 관한 주제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조르바가 화자가 다른 점은, 그가 정신적인 관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미국인 블로그에서 번역 인용)

 

여러 서평을 통해 만난 독자들은 모두 조르바에게서 위버멘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위버멘쉬는 대개 초인(Superman)으로 번역되나, 소설에 나오는 그의 성격을 보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번역이 오히려 적당할 것 같다. 평생 틀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해서 모범생으로 살기를 추구해 온 나는 낙타였을까, 사자였을까, 아니면 어린아이였을까?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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