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동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를 보다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라는 내용이 좋기에 아래와 같이 요약해서 소개한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아무 계획 없이 아이를 낳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지요. 저출산 현상을 진화적 적응이라는 면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아이를 기를 능력이 될지, 아이 양육을 위해 주변 환경이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애를 낳으면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되고 그게 계산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도 과감히 출산하는 사람은 정말 애국자인 거지요. 하지만 생각 없이 애를 낳는 건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이나 출산에 앞서 돈 계산이 앞서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현실적인 고민보다는 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서로 좋으면 결혼해서 같이 고생하며 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요즈음은 계산이 앞서다 보니 다 준비된 상태가 아니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돈을 모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고 시간이 흐르며 불안해지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못 하는 거지요. 지나치게 높은 삶의 기준이 문제인 겁니다.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양육과 가사분담에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임신 말고는 남자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답니다. 출산과 양육에 관해 엄청난 국가적 투자와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고 교육 문제를 포함한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기르는 일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라는 걸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최교수의 유튜브를 보며,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글을 통해 “자연적 출산이든 입양이든 아이를 갖는 것은 항상 위험이 따르지만, 더 위험한 것은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라며 부성과 모성의 회복을 기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생각났다.
저출산이 계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전망을 참고해 본다.
조 교수는 2021년 1961년생 은퇴자 수 90만 명, 2024년 지방 대형마트 철수 도미노, 2027년 지방 백화점 중심의 상권 몰락, 2035년 여성 3명 가운데 1명이 65세 이상인 '할머니 전성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이 외에도 학교 감소, 노동 인력 부족, 경제성장률 저하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아이를 잘 낳고, 잘 키울 수 있는 나라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일 것이다. 정부는 범부처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책을 만드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장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열정보다 저출산 속도를 먼저 늦출 수 있는 실효성이 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20년 5월 26일에 방영된 뉴스9에서)
BC 1세기 말, 그러니까 2100년쯤 전의 로마제국도 요즘의 대한민국처럼 자녀의 숫자가 줄고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어나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더했다. 그런 연유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정식 혼인에 관한 법을 만들었다. (이하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을 요약 인용)
“정식 혼인에 관한 법”은 중, 상류층을 노린 것이다. 원로원이나 기사 계급에서 독신을 고수하면 불이익을 받게 했다. 25~60세의 남자와 20~50세의 여자가 결혼을 안 한다든지 과부도 자녀가 없는데 1년 안에 재혼하지 않으면 독신으로 보았다.
50세 이상의 여자가 자식이 없고 독신이면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불리한 처벌을 받으며(재산 몰수도 있다) 50세 이전이라도 결혼할 때까지 일정 세금을 내야하고 결혼해도 셋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많은 세금을 내야 했다. 임신이 잘 안 되는 여자들은 어쩌라고?
공직 생활에서도 자식을 가진 사람을 우대하도록 했다. 독신자 < 무자식 기혼자 < 자식을 가진 기혼자 < 자녀가 많은 기혼자, 이런 식이다. 연임 근무지의 공직 휴직 기간도 자식 1명에 1년씩 단축해줬다. 자식이 아주 많으면 공직 휴직 기간도 없다. 계속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 자식을 셋 낳은 여자는 친정아버지의 ‘가부장권(家父長權)’에서 해방되어 남-녀 평등이 되었다. 자식을 많이 낳은 해방 노예도 옛 주인과의 고용 관계(관습적 봉사)를 끊을 수 있었다. 이혼도 여러 제약을 두어 못하도록 귀찮게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식의 법을 만들어서 반강제적으로 출산을 장려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대책을, 그것도 강력하고 효율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해야 할 것 같다. 생태계에서 번식이란 생명체의 본능일진대, 그 본능마저 억눌러야 한다면 너무 비참한 삶이 아닐까?
(2022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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