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멕시코에서 본 긴 꼬리 찌르레기

삼척감자 2022. 9. 4. 03:46

지난 해 말에 휴가를 보낸 멕시코 캔쿤(Cancun)일 년 내내 기온이 높고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열대성 기후대에 속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내가 묵었던 리조트에는 아예 문이 없이 앞뒤로 뚫렸거나, 문이 있어도 늘 열어 둔 건물이 많았다. 그런 건물 안팎으로 날 짐승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사람 구경하기에 바빴다. 거기에서 제일 흔히 본 새가 까마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집은 훨씬 작은, 긴 꼬리 찌르레기(Great-tailed Grackle

)였다. 꼬리의 길이가 몸 전체 길이의 절반 정도이고 온몸이 새카맣고 눈매까지 불량스러워서 예쁜 구석이 전혀 없는 놈이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수영장 가에서 우리 일행이 고스톱을 치고 있으면 바로 옆에 앉아서 개평을 뜯으려 들었고, 로비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테이블 사이를 거침없이 날아다니다가 술병을 늘어놓은 선반이나 사람들이 앉은 소파에서 쉬기도 했다.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안주 부스러기나 건드릴 뿐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과자 부스러기나 술잔을 건드리지 않으니 자주 들락거려도 전혀 방해되지는 않았다. 다만 울음소리가 매우 시끄러워서 듣기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리조트 어디서든 이놈들과 마주치면 새나 사람이나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서로 무심했다. 가끔은 불량스러운 눈빛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길게 늘어선 기념품 가게에도 이 새들은 휘익 날아들어 왔다가 바로 날아갔지만, 아무도 새를 쳐다보지 않았다. 주일에 성당에 갔더니 거기에도 이 찌르레기 두어 마리가 어느새 들어와서 성당 천장의 전등이나 크리스마스 장식물 위에 앉아서 미사 드리는 사람들을 잠깐 내려다보더니 바로 날아가 버렸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산책길에 마주친 멧새 몇 마리를 바라보다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아시시 평원에서 새들에게 전도했다는 이야기기가 생각났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아시시 평원을 걸어가다가 새들이 떼를 지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설교하였다.

 

"나의 새 자매들이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만드신 분을 많이 찬미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옷을 입히시려고 깃을 주셨고, 날아다니도록 날개를 주셨으며,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모두 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 중에서도 여러분을 특별히 귀하게 만드셨고, 맑은 대기 속에다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여러분을 보살피십니다."

 

그러자 새들은 프란치스코의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본성대로 목을 늘이거나 날개를 빼고 입을 벌려 기이한 몸짓으로 흥겨워하며 그를 응시했다. 프란치스코는 수도복 자락으로 새들을 스치며 새들의 한가운데를 오갔다. 그리고는 십자성호를 그어 새들을 축복하자, 새들은 기쁜 듯이 몸짓을 하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나중에 다시 멕시코 캔쿤에 가서 긴 꼬리 메추라기를 만나 그들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전하면 무어라고 할까? 아마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맑은 대기 속에다 마련해 주신 터에다 왜 당신들은 제멋대로 산을 깎고, 길을 만들고 건물을 짓고 사람들을 모아들여서 우리의 평화를 깨뜨리는 거요?라고 하지 않을까?

 

(20201월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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