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예외도 많고 규칙도 많고, ‎참 끔찍한 언어

삼척감자 2022. 9. 6. 02:56

체육관에서 자주 만나서 낯이 익은 한국인의 권유에 따라 컴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의 무료 강의에 등록하러 간 게 작년 8월 말이었다. 무료 강의가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육(ESL)뿐이어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유학생 출신인 그분도 몇 년째 그 강의를 반복 수강한다는 얘기를 듣고 반 배정 시험을 치르기는 했지만, 수준이 낮은 강의를 듣는 건 아닌가 싶어서 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반 배정 시험은 독해력 위주의 25개 문제였는데 24개를 맞추어서 고급반에 배정되었다. 한국에서 받은 영어 교육이 독해력 위주였고, 네 개 중에서 하나를 찍는 사지선다식 시험에는 이골이 났으니 고득점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채점을 마친 선생님은 천재 수강생을 맞은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교육 내용이 내 수준에 낮을 거라며 높은 수준의 회화 위주 강의가 없음을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천재에서 신통치 않은 학생으로 전락하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영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관용구 ‘one thing and another’(~ ~는 별개이다)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It’s one thing to understand English, it’s another thing to speak it right. (영어를 이해하는 것과 제대로 말하는 건 별개이다)’ 라는 걸 금세 느끼게 되었다. 독해력 위주로 배운 영어와 회화 중심의 수업은 아주 다르다는 얘기다.

 

얼마 전에 배운 해야 한다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 보자.

독해력 위주로 배운 사람에게는 should, ought to, have to, had better, must 등을 모두 해야 한다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다. 이들 표현 간의 차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번역할 때는 앞뒤 문맥에 따라 적당히 표현의 강도를 조절하면 된다. 그런데 교재와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이들 조동사의 의미를 다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should : 하는 게 좋다. (‘알아서 해정도의 의미. 안 해도 상관 없다는 뜻)

ought to : should와 같은 의미이지만 더 격식을 갖춘 표현.

have to : 할 필요가 있다. should보다 조금 더 강한 표현

had better : 해야 한다. (‘안 하면 재미없어정도로 강한 느낌)

 *예전에 한국에서 공부할 때 하는 게 좋다라는 의미로 배웠으나, 거기에 해당하는 표현은  should.

must :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위적, 강압적인 표현)

 

예전에 영어를 배울 때, ‘had better’하는 게 좋다라는 정도의 약한 권유의 의미가 있는 거로 이해했지만 선생님은 must는 강압적인 의미가 있고, had better로 그다음으로 강한 표현이니 회화에서는 신중히 사용하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should가 가장 약하고 must가 가장 강한 표현으로서 약에서 강으로 순서대로 나열하면 should=ought to <have to < had better < must가 되겠다. 직장 생활을 하며 미국인 직원들에게 내 깐에는 부드럽게 얘기한다고 ‘had better(‘하는 게 좋지 않겠소라고 생각)’라는 표현을 남발했던 게 뒤늦게 부끄러워진다. 미국인 직원들이 안 하면 재미 없소라는 표현이나 남발하는 강압적인 상관으로 생각하지나 않았을까?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귀가 열리고 입이 트이고 눈치마저 느니 미국인과의 일상 대화가 편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영어 실력은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미국인들은 외국인이 정확하지 않은 영어를 사용해도 그만하면 잘하는 편이라고 너그럽게 넘어가지, 잘못된 표현을 지적하지 않으니 수십 년 동안 미국에 살아도 영어가 늘지 않을 수밖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국어와 판이한 영어란 언어는 정말 배우기 어렵다. 오죽하면 ‘The Two Popes(두 교황)’라는 영화에서 추기경일 적에 베네딕도 16세 교황을 만나 영어로 대화하며 며칠을 함께 지낸 프란치스코 교황이 헤어지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까.

 

“Speaking English is exhausting.

Terrible language, so many exceptions to so many rules.”

 

영어만 쓰자니 너무 지쳤어요.

예외도 많고 규칙도 많고, 참 끔찍한 언어죠

 

(2020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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