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소설 파친코를 읽고

삼척감자 2022. 9. 7. 05:17

가끔 한국어 번역본 소설을 구할 수 있어도 영문판을 사서 읽을 때가 있다. 한국에서 발행한 책이 비행기 타고 바다를 건너오면 한국 정가의 두 배 이상이 되니 한두 번 읽고 말 한국어 번역판을  사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문판 소설은 대개 중고로 살 수 있는데 우송료를 포함해도 $5 이하에 살 수 있으니 가격이 믿을 수 없을 만치 싸다. 이런 걸 연금 외에 별다른 수입이 없는 은퇴 노인의 생존 전략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에 화제가 되는 미국 이민 2세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영문으로 읽은 까닭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베이에 알아보니 중고 책값이 우송료를 포함해서 $4이었다. 우선 위키피디어로 줄거리와 작품 해설을 몇 번 읽고 머릿속에 담아 둔 다음에 영문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페이지부터 모르는 단어가 매우 많았다. 그럴 때마다 사전을 찾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독서의 흐름이 깨어질 테니 꼭 알아야 할 단어가 아니면 과감하게 건너뛰고 이야기의 흐름을 쫓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영문판 책은 500쪽 가까이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이니 열심히 읽어도 끝내는 데 한 달 이상 걸릴 것 같았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무거운 말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뜻밖에도 재미가 있었다. 책을 읽다가 손에서 놓으려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밤에 자다가 깨어서 책을 읽다가 자고, 새벽에 깨면 그 책 읽는 거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으니 책에 이렇게 몰두해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예상보다 훨씬 짧은, 일주일 남짓 걸려서 다 읽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며칠 지나 거금 $50 남짓 되는 책값을 지불하고 두 권으로 된 한국어 번역판을 주문했다. 그래도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국어 번역판 출판사에서는 작품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삶은 모두에게나 고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했다. 그들은 그저 자식만큼은 자신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시대는 그들의 평범한 소원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은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양진은 남편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해나가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유일한 자식이자 정상인으로 태어난 딸 선자를 묵묵히 키워나간다.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란 선자는 안타깝게도 엄마 나이 또래의 생선 중매상 한수에게 빠져 결국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불행의 나락에 빠진 선자를 목사 이삭이 아내로 맞이하면서 구원을 받게 되고, 둘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의 오사카로 향한다. 일본에서 한수의 핏줄인 첫째 노아와 이삭의 핏줄인 둘째 모자수를 낳은 선자는 친정엄마인 양진처럼 여자로서의 인생은 잊어버린 채 아내와 어머니로 사는 삶을 고생스럽게 살아가는데…….

부산 영도의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에 이르는 그 치열한 역사, 뼈아픈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차별받는 이민자들의 투쟁적 삶의 기록, 유배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고향과 타향, 개인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한 여성의 삶을 안쓰럽게 만드는지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선자의 큰아들 노아가 자살하는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다.

둘째 아들 모자수를 낳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목사 이삭이 죽고 몇 년 후 장남은 명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한수가 도와준다. 3학년 재학 중 돈 많은 후원자로만 알았던 한수가 사실은 자신의 생부이며 야쿠자 간부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노아는 학교를 자퇴하고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다음 먼 곳으로 떠나 철저히 일본인으로 지내며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 넷을 낳아 기르게 된다. 가족을 떠난 지 16년 된 어느 해 노아의 행방을 알아낸 한수와 선자는 노아의 사무실 근처에서 그를 먼발치에서 본다. 한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자는 노아를 만나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떠났지만, 노아는 바로 사무실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게 되는 것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생부가 목사 이삭이 아니라 야쿠자 간부인 한수였음이 그리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까?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게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포기할 만큼 중요했을까? 나 같은 속물로서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한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내국인이면서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재일 교포들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이 소설을 읽으며 같은 처지에 놓인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국인들과 결혼한 외국 태생의 배우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더는 무시당하거나 차별 대우받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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