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하늘이 부르실 때

삼척감자 2023. 5. 25. 20:58

100세 장수 시대라고는 하나 남녀 평균 수명이 90세가 넘는 나라는 없으니 장수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의 국민도 대개 80대에 세상을 떠난다고 봐야 한다. 남자의 평균 수명만 놓고 보면 이들 국가의 남자들은 대개 80세를 전후하여 세상을 떠난다고 하며, 건강 수명만 보면 70대 중반 이후에는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침 산책을 나서다가 옆집에 사는 잭(Jack)을 만났다. 늘 그렇듯이 우는 듯 웃는 듯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는 미소, 느릿느릿 걷는 발걸음이 측은해 보인다. 일주일에 세 번 받는다는 신장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매번 네 시간씩 걸린다는 그 과정이 얼마나 지겨울까? 일흔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신장을 이식받는 건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 하늘이 부를 때까지 그렇게 자주 병원 나들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면 도대체 자신의 삶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작년에는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잘랐다고 하더니 건강 문제는 그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가장이 그러니 아내 록산느ORoxanne)의 표정도 늘 어둡고, 주인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반려견 소피(Sophie)도 활기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일흔두 살이다.

 

어저께는 몇 달만에 잠깐 집 밖에 나온 스캇(Scott)을 보았는데, 몸이 불편해서 집 안에만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새하얬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탓인지 나와 얘기하는 동안에도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일흔다섯이니 나보다 한 살 더 많은데,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노인 얼굴이다. 몇 달 전에는 구급차로 병원 실려 갔었는데 지금 건강 상태는 그저 그렇다고 한다. 진작에 담배를 끊었어야지. 그의 나이는 지금 일흔다섯이다.

 

심혈관에 이상을 느껴서 의사를 만나고 몇 가지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나와 가까이 지내는 분은 여든 바로 문턱에 있다. 몸에 이상을 느껴 의사를 찾고 검사를 받아보니 아주 고약한 암에 걸려있는데 수술조차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망연자실해 있는 어느 성당 교우는 작년에 일흔을 넘은 나이다. 얼마 전부터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는 우리 옆 동네에 사는 은퇴 목사는 이제 일흔여덟 살이다.

 

주위에 건강 문제로 고생하는 70대 남성들을 보며 내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려니 하는 생각 들며 우울해진다.  평소에 운동이나 식단 관리에 힘쓰던 사람조차 세월이라는 복병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제아무리 오래 살려고 노력한들 어느 날 하늘이 부르면 갈 수밖에 없으니, 인간은 정말 미약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며 다음 노래의 가사를 묵상해 본다.

 

눈 깜박이는 것보다 엄청나게 빨리

번개가 번쩍이고 그분이 하늘을 가르신다

아무도 그날과 시간을 알 수 없네

나팔 소리 울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네

하늘이 부르실 때

우리는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분 앞에 선다네

<중략>

하늘이 부르실 때까지

누구에게나 사랑할 시간과 웃을 시간,

살아야 할 시간과 고, 죽어야 할 시간이 있다네

그래서 나는 사랑인 그분을 위해 산다네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 잘 살아왔다고 말씀하시는 걸 간절히 듣고자 하네

<후략>

 

Nicole Mullen‘When Heaven Calls’에서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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