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백만 불짜리 미소

삼척감자 2024. 9. 25. 07:17

“Handbook for the Ministers of Care”라는 책에서 다음 글을 보았다. 원문은 영어인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다리를 절단하거나, 유방 또는 다른 신체 장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사람은 외모가 흉해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겪은 사람은 몸이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고 해당 부위가 온전하게 대치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육체적인 고통 말고도 이러한 손상은 정신적인 충격을 수반한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변화에 대처할 수 없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픔에 빠지게 된다. 또 우울증에 빠져서 재활 훈련 등을 완강히 거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손상에 대하여 보이는 반응은 비탄, 우울증 그리고 분노이다. 이를 수용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손상이나 위기에 대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러한 충격에 대처하는 데는 환자가 이러한 손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 어떠한지를 얼마나 기꺼이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 하나를 잃고 나서 이런 글들을 대하면 느낌이 전과 다르다. 사고 후 두 달 만에 의식을 되찾고 보니 다리는 절단되어 있었고, 성대와 삼키는 근육이 망가져서 여섯 달 동안이나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말 한마디 못 하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아도 나는 그 당시에 일어난 일들을 참으로 담담하게 잘 받아들였던 것 같다.

 

육체적인 고통이 심하기는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흐르면 신체적인 변화에도 적응해 낼 수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분노? 그것도 별로 크게 느끼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으려니 하고 생각 했다. 나쁜 일은 돌아서면 잊고, 늘 웃으며 살고자 하는 유머 감각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말을 못 하고 기운이 없으니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은 표정이었다.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늘 미소를 지었다. 문병하러 오는 사람마다 끔찍한 상황에서 미소 짓는 나를 보고 감탄했다. 매주 방문하시던 미국인 신부님은 오실 때마다, “Wow, you got a million dollar smile.”이라고 말씀하셨다. 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항상 미소 짓는 나를 좋아하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에 가끔 들르면 늘 미소 짓던 나를 기억하고는 반가워한다.

 

의족을 맞춰서 끼고, 걷기 훈련을 받기 위해서 보행 전문의가 있는 재활원으로 옮겼을 때였다. 다시 살아난 것이 기뻤고, 건강이 나날이 회복되는 것이 즐거웠고, 훈련을 받으며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니 행복했다. 그래서 늘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지냈다. 재활원에 등록할 때는 휠체어를 타고 갔었는데 많은 연습을 거친 끝에 어느 날 드디어 워커를 짚고 걷기 시작했다. 첫걸음을 떼는 아기의 마음이 그럴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다가 우연히 부근에 있던 내 나이 또래 의 미국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서인지 얼굴이 시뻘게 가지고.

 

나중에 점심시간에 이 아주머니와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을 함께했는데, 그 아주머니가 말하기를, "난 가벼운 중풍을 맞아서 걷는 것이 불편했어요. 모든 것을 비관하고 포기했었답니다. 재활 훈련도 마지못해서 받고 있었어요. 당신을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는데 다리 하나를 잃은 사람이 항상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늘 휠체어를 타고 오더니 오늘 드디어 일어나 걷는 걸 봤어요. 나도 모르게 감격해서 눈물을 쏟았어요. 나도 이제부터 재활 훈련을 열심히 받기로 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내 미소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앞으로도 늘 웃으며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시 다짐해 본다.

 

(2007년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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