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었다. 병원에 다녀오는데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밀리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싶어서 차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차 바로 옆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마침, 차가 정지 상태였기 때문에 자세히 보았더니 방금 숨이 넘어간 듯한 시신이었다. 머리가 깨어졌는지 피가 잔뜩 흘러나와 있고, 반듯이 누워서 하늘을 향한 눈은 반쯤 감겨 있는데, 허름한 옷차림, 낡은 신발,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좀 떨어진 곳에는 가해자로 보이는 몇 사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여느 교통사고와는 달리 망가진 차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지역 신문을 보았더니 피해자는 23세 된 남미 이민자인데 일용직 노동자로서 고속도로 옆에서 풀을 깎고 있다가 지나가던 트레일러에서 빠져나온 대형 타이어에 맞아 즉사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그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테고, 이루고 싶었던 꿈도 있었을 텐데. 주님은 그토록 젊은 나이에 왜 그의 영혼을 데려가셨을까? 며칠 동안 그를 생각하며 내내 우울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의식을 잃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한 번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야산을 헤매었다. 산꼭대기로는 좀 낡기는 했으나 아름다운 집 한 채가 보였고 야생화가 끝 간 데 없이 가득히 피어 있는 아름다운 산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집으로 오는 길을 정신 없이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되찾아 살아났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본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내가 천국을 보고 온 것일까? 주님은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어 나를 돌려보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님의 뜻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의 뜻이 어떠한지 우리 인간들이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또스또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수도원장의 입을 빌려 "성경을 통해 풀리지 않는 의문은 하나도
없다."라고 했지만, 나는 성경을 읽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참으로 많다. 요즈음 욥기를 다시 차근차근 읽고 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열 번 가까이 읽었고, 해설서도 두 권이나 읽고, 영문 성경도 주석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읽어 보았지만, 아직도 욥기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 바로 전날, 분도 수도원으로, 레지오 마리애 야외 행사에 참석하러 갔다가 사 온 책이 하필이면 "욥이 말하다."라는 욥기 묵상서였다. 마치, 앞으로 닥칠 고난을 예비하라는 주님의 계시인 것처럼.
주님께서는 왜 죄 없는 욥을 사탄의 손에 맡기시어 그러한 고통을 겪게 하셨는지 아직도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욥이 그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고통을 잘 이겨내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해 낸 피조물이 매우 자랑스러우셨을 것 같다.
주님께서는 욥에게 그가 잃는 것의 몇 배를 보상해 주셨다고는 하나 욥은 그 이후에 행복했을까? 잃어버린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새 가족이 생긴다 해도 메워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다리 하나를 잃고 불편한 상태로 지내보고 나니 그래도 욥은 행복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망각과 적응, 아니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기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은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라는 좌우명을 새긴 반지를 끼고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경계했다는 다윗 왕이 생각난다. 인생에서 영원할 것 같은 슬픔이나 기쁨도 생각보다는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2008년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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