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제발 잠 좀 잡시다

삼척감자 2024. 9. 26. 05:21

뉴욕 타임즈에 게재된 어느 간호사의 글에서 “간호학교에 입학하고, 첫 강의에서 어느 교수가 환자 치료의 역설적인 진실 중 하나로서 ‘환자는 병원에 잠자러 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라는 대목을 보고 내가 교통사고 후 병원에 몇 달 입원해 있는 동안 내내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또 “정신 건강을 위해서,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 그리고 강력한 면역 체계의 유지를 위해서 환자는 잘 자야 하지만,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밤마다 도막 잠에 시달리며 제대로 잘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썼다. 더 읽어 보니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데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시간 맞춰서 하는 검사와 투약이 환자의 수면보다 순위가 앞선다는 얘기였다.

 

병원에 입원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온종일 밤낮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잠은 푹 잘 수 있을 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간은 많아도 환자가 편히 잠자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일정한 시간마다 맞아야 하는 항생제 주사, 가끔 혓바닥 밑으로 조그만 나무 주걱같이 생긴 것을 집어넣는 체온 측정, 자는데 느닷없이 눈까풀을 벌려 플래시 불빛을 비춰보는 동공 확장 검사 등은 환자가 잔다고 건너뛰지는 않았다.

 

온몸 씻어주기는 왜 꼭 새벽 두세 시에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겨우 잠들었는데 발가벗은 환자의 몸을 좌우로 굴리며 비눗물을 묻히고 찬물로 씻어주면 겨우 청한 잠은 멀리 달아났고, 간간이 들리는 옆 병상 환자의 신음을 들으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청소부들은 환자가 자건 말건 한밤중에 불을 환히 켜놓고 노래를 불러가며 청소하는 데도 병실 담당 간호사는 제지하기는커녕 함께 크게 떠들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간호사나, 간호보조원 그리고 청소부들이 들락거릴 때마다 불을 켜놓고 밤새 그대로 두기가 예사여서 숙면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한밤중에 울려대는 정맥 주사용 펌프의 경보음을 들으면 왜 그리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지.

 

그냥 자게 내버려 두어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파이프와 전선 그리고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운 깁스 때문에 몸을 뒤척일 수가 없어서 잠자기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온몸의 통증과 갖가지 근심 걱정과 불안, 초조로 잠을 이루기 어려운데 자는 환자를 수시로 깨우니 밤마다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아예 잠자기를 포기하고 꼬박 밤을 새우려면 갖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기도하며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소연하며 눈물짓기도 하고, 엄청나게 나올 병원비와 앞으로 겪어야 할 경제적인 어려움을 생각하며 대책 없이 괴로워했다. 막연한 공포에 떨며 밝은 새벽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때는 캄캄한 병실이 마치 지옥 한복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여러 달 고생하다가 그해 말에 퇴원해도 좋다는 병원 측의 통지를 들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죽어서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긴 채 캄캄한 무덤 속에 있던 라자로를 찾아가 주님께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 43) 하고 명령하시자 죽었던 라자로가 터벅터벅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졌었던 환자가 의사에게서 “당신의 병은 다 나았습니다. 이제 퇴원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을 때의 기쁨도 다시 살아난 라자로의 기쁨에 못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 하나를 잃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육신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그리 여유가 없지만, 무덤 속 같은 캄캄한 병실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생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삶이야말로 라자로가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와 다시 살아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이번 부활시기에는 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빌어 본다.

     “라자로를 살리신 주 예수님, 앓는 이의 병을 고쳐 주시고 구원해 주소서.”

 

(2014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