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과 재활원에 몇 달 동안 입원하였을 때 다리 하나를 잃은 나에게 재활원에서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기만 해서 축 늘어진 근육을 강화하는 근력 운동과 평행봉을 짚고 일어서는 훈련을 주로 시켰다.
몸이 차차 회복되면서 늘 차고 있던 성인용 기저귀 사용 횟수를 줄이기 위해 대소변 용기를 사용해서 배변을 처리하는 훈련을 받았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침대에서 휠체어로 내려오고, 누군가가 휠체어를 밀어주어야 재활원 내에서 이동하는 게 고작이었으므로 화장실 이용은 꿈도 못 꾸었고 산소 호흡기 사용을 위해 기도에 뚫은 구멍 때문에 말을 전혀 할 수 없을 때였다.
어느 날 씩씩하게 생긴 간호사가 큰 볼일과 작은 볼일을 보고 실을 때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볼일을 보고 싶으면 먼저 비상벨을 눌러라. “
“간호사가 오면 쉬야(pee)인지 응가(poo)인지 분명히 의사 표시를 해야 필요한 용기(container)를 대령할 것이다.”
“당신은 말을 못하니, 쉬야는 1번, 그러니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응가는 2번, 손가락 두 개를 치켜올려라. 그러면 이 재활원의 간호사는 다 알아본다.”
그 설명을 듣고도 며칠 동안 참 헷갈렸다. 큰 볼일을 보려고 비상벨을 누르고, 간호사가 달려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얼른 소변 통을 가져와 들이밀었다. 작은 것이 1번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도 당연히 큰 것이 1번이라고 생각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도리질을 하며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고 응가가 마렵다고 하니 간호사가 다시 대변 통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응가는 2번이니 다음부터는 엄지손가락 말고 손가락 두 개를 치켜올리라고 했다.
작은 볼일이 보고 싶어서 간호사에게 2번이라고 손가락 두 개를 치켜올리면 간호사가 얼른 대변 통을 가져왔고, 나는 다시 아래쪽을 가리키며 쉬야가 마렵다는 몸짓을 하면 간호사가 다시 소변 통을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1번과 2번을 헷갈릴 때마다 나는 참 민망스러웠고 간호사는 짜증스러워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내가 병원에서 정한 의사소통 방식에 따라서 대소변 가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쌍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으니 대소변을 볼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일은 없다. 그런데 나의 삶에서 큰일과 작은일, 1번과 2번을 헷갈리거나 내 멋대로 바꾸어버린 적은 얼마나 많았을까?
주일에 미사를 빼먹으며 다른 볼일을 본다든가, 가족과 함께 놀러 가기로 했는데 직장 일이 바빠져서 계획을 취소한다든가, 운동이나 연주회 같은 딸들의 과외활동 참관 약속을 가게에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깨버린다든가, 딸들과 함께 지내기보다 술 먹는 걸 더 즐긴다든가… 등등, 1번과 2번을 내 멋대로 바꾼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딸들 모두 출가하고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가끔 후회된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2013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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