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영어 교과서에 실렸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이라는 수필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었다. 앨라배마 주에 살 때, 집에서 자동차로 가면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던 헬렌 켈러의 생가를 가족과 함께 찾아본 건 예전에 읽은 그녀의 수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비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였지만 그녀는 만약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를 'Three days to see'란 제목으로 수필을 써서 발표했다. 헬렌 켈러의 글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을 잔잔히 위로했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마주하는 이 세계가 날마다 기적 같은 것임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체적 조건이 헬렌 켈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편이다. 그러나 다리 하나는 없고, 하나는 망가진 상태에서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걸으면 불편한 건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게 참 많다. 나도 단 사흘이라도 제대로 걸어 볼 수 있다면 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그게 이루어 질 수 없는 거라서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억눌러 버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꿈이야 꾸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느 날부터 하느님께서 사흘 동안만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다면? 생각만 해도 참 황홀하다. 허락 받자마자 떼를 써볼 것이다. 하느님, 사흘이 뭡니까? 소원을 들어 주시는 김에 좀 화끈하게 들어 주십시요. 죽을 때까지, 아니면 3년, 아니면 3개월정도라도 늘려 잡아 주셔야지요. 그러나 결국은 무리한 소원 드리기를 포기하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3일을 뜻있게 보내기로 한다. 3일이라도 그게 어디냐 말이다.
몇 년 후 어느날, 내일 아침 해뜰때부터 3일 동안 걸을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룰 것이다. 3일 동안 무얼 하며 지낼까? 어디로 가던 3일내내 자동차 핸들은 내가 꽉 잡고 있어야 하겠다. 오랫 동안 운전하며 과속 티켓 한 장 받지 않은 모범 운전을 아내에게 과시할 것이며 아내는 전에 늘 그랫듯이 옆 자리에 앉아서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날, 해뜨기 전에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성가 ‘마냐니따’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들을 것이다. 아침 식사는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간단히 때우면 된다. 드디어 해가 뜨고 다리가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애써 흥분을 가라 앉히고 아내를 재촉하여 차에 올라 힘차게 시동을 건다. 목적지는 Cape Cod이다. 특별히 거기로 가야만 할 이유는 없지만 하루에 왕복하기에 적당한 거리고 바닷이기 때문에 거기로 정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주행 코스는 해안선을 따라서 올라가기로 했다. 아내는 예전 버릇대로 차가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옆에서 잠에 곯아 떨어졌다. 이제는 GPS가 있으니 자는 아내를 짜증스레 깨워가며 지도 봐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바다에 도착했다. 우선 수평선을 향해 미친듯이고래고래 소리부터 질러본다. 그동안 쌓인 서러움과 분노를 시원하게 바다로 그리고 하늘로 날려 보낸다.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바다로 뛰어든다 이거 몇 년만에 느껴보는 바닷물의 감촉인가? 좀 차지만 몸을 감싸는 바닷물이 포근하고 편안하다. 그러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팔다리를 놀리며 개헤엄이든 개구리 헤엄이든 쳐본다. 얼마 못 가서 기운이 빠지지만 그래도 물에서 떠다니는 게 신난다.
얼마 후 물에서 나와 모래밭을 걷다가 그리 높지 않은 바위에 오른다. 바위 틈새로 드나드는 물을 움켜잡아 보다가 들락거리는 작은 게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장난치다가 금세 놓아준다.
그렇게 수평선 넘어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짙푸르고 파도가 거친 고향 바다를 그리워할 것이다. 지나간 어린 시절에 고향 바닷가에서 함께 놀던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뉴저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둘째 날, 좀 피곤하기는 하지만 일어나 라면을 끓인다. 종일 돌아다녀야 하니 오늘은 라면 한 개 반에 계란 두개를 넣기로 한다. 물론 파도 넉넉히 넣고. 아침을 마치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그리 높지 않은 베어 마운틴으로 향한다. 오늘은 산기슭에 잇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오랜만에 걸으니 매우 힘들기는 하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정상에 올라 남들 눈치를 보며 소리 지른다. 모처럼 정상으로 돌아온 성대 사이로 나오는 고함이 시원하다. 악쓰는 소리와 함께 미움은 모두 날려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는 돼지 비계와 소주를 챙겨 올 수 없었던 걸 아쉬워한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20대 젊은 나이일 적 어느 겨울날 영하 20도의 매운 날씨에 예쁜 아가씨(지금의 아내)와 함께 강화도 마니산에 올랐던 날을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은 늙은 할머니이지만 그 당시에는 푸릇푸릇한 젊음이 싱그러웠던 아가씨를 생각하며 늙어 가는 걸 조금은 서러워할 것이다.
셋째 날에는, 큰딸과 작은딸의 아이들, 그러니까 나의 외손자와 외손녀를 모두 데리고 동네 공원으로 갈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나는 그 주위를 자전거로 열 바퀴는 돈다. 자전거 타기에 싫증이 나면 아이들과 함께 논다. 제일 어린 놈을 내 어깨에 올려놓고 목마를 태워 주고 그보다 조금 큰 놈의 양팔을 잡고 빙글빙글 어지러움을 느낄 때까지 돈다. 시소 타기, 그네 밀어주기, 미끄럼 타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함께 한다.
점심 식사는 공원에서 바비큐로 한다. 불피우기, 고기 굽기, 아이들에게 소시지 구워주기, 야외 테이블에 음식 올려놓기 … 모두 내가 직접 한다.
저녁에는 성당에 가서 미사 참례한다. 정말 오랜만에 복사로 신부님을 도와 드리며 제단에서 직접 느끼는 주님의 은총이 얼마 큰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밤늦게 아내와 함께 기도하며 3일동안 걸을 수 있게 해주신 주님 은혜에 감사 드릴 것이다.
그리고 사고 전에 오랫 동안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해주셨던 주님의 은혜에 더 큰 감사를 드릴 것이다.
앞으로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불편하게 지내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것이다.
(2013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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