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장애는 극복이 안 되는 거다

삼척감자 2024. 9. 26. 05:12

내가 휠체어 굴리는 연습을 시작한 건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3개월 지나 재활원에서였다. 바닥이 미끄러운 재활원 복도에서 처음 휠체어 굴리는 연습을 할 때는 기운이 없었지만, 슬슬 잘 굴릴 수 있었다. 퇴원 후에 카펫이 깔린 아파트 복도에서 휠체어를 굴려보니 조금 힘들었다. 경사진 실내 바닥은 매우 힘들고 바닥이 균일하지 않은 실외에서 휠체어 굴리는 건 더욱 힘들다. 그럴 때는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주 어야 한다. 내가 다리 하나를 잃기 전에는 휠체어는 바퀴를 슬슬 돌리면 그리 힘들이지 않아도 미끄럽게 굴러가는 줄 알았다.

 

대학병원에서 재활원으로 옮긴 다음 날 아침에 입원실 앞에 준비해 둔 휠체어를 보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 그렇지. 휠체어로 생활하면 되겠구나.” 대학병원에서 지낼 때는 다리 하나를 잃은 충격보다도 평생 침대에서 지내야 하는 절망이 더 컸다. 내가 왜 휠체어 생각을 못 했을까? 장애인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잃었거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이 의족을 끼고 운동까지 한다는 신문 기사를 볼 때도 다리 없는 사람도 노력하면 모두 그렇게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던 헬렌 켈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된 감동적인 얘기를 들을 때도 중복 장애인이라도 노력만 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보고서야 그런 성공담은 극소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장애가 되었을 때의 나이, 운동 신경, 장비 구매와 훈련에 드는 엄청난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인 뒷받침, 주위의 후원 등,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야 그런 성공을 이룰 수 있지 아무나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운동까지 한다는 장애인이 부착하는 의족은 하나에 10만 불이 넘는 거금을 주어야 구할 수 있다니 나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꼴 물건이다. 비교적 싼(그래도 거의 3만 불짜리다) 의족으로 걸을 수 있기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큰 욕심을 낼 건 아니다.

 

똑같이 공부했다고 다 명문 대학을 졸업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고,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모두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사관학교를 졸업했다고 모두 장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과학자로 지냈다고 모두 노벨상을 받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모두 슈퍼맨이 될 수는 없다.

 

가끔 나보고 왜 운전을 배우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질문도 관심의 표현이므로 성의껏 대답한다. 하나 남은 오른쪽 다리의 신경과 근육이 온통 망가져서 감각이 없는 부분도 있고 발을 들어 올릴 수도 없다고. 때로는 바지를 조금 걷어 올려서 종아리에서 발바닥에자로 받친 브레이스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면 으레 다음에 듣게 되는 말은, “손으로 운전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하지만 어쩌겠나!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어야지. 나도 다리 하나를 잃기 전에 휠체어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관심조차 없었는데. 손으로 운전하기 위해 차량 개조를 하면 다른 사람은 내 차로 운전하기가 매우 불편하거나, 못한다. 적지 않은 차량 개조비와 시간당 $350에 달하는 교습 비용도 무시 못 한다. 게다가 아직도 자동차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차를 타면 무서울 때가 잦은데 운전이라? 양손으로 목발을 짚으면 손으로 물건을 들 수가 없는데 운전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이나 많다면 운전을 취미로 하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써서 지금 한 대 있는 차를 개조해서 내 전용으로 쓰고, 아내가 운전할 수 있도록 차 한 대를 더 사야겠지.

 

1급 시각 장애인이며 한국 최고의 하모니카 주자 전제덕은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공한 장애인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은 장애가 아니다. 단지…" "단지 불편할 뿐이다, 그거죠? 저는 그거 모두 개소리라고 생각해요.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어려운 건 어려운 거예요. 장애를 극복한다고 하는데, 극복이란 단어도 싫어요. 뭘 극복해요? 장애를 어떻게 이겨내? 장애는 불편한 거고 극복이 안 되는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죠.” ―그럼 '장애를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기자들이 그렇게 포장하기도 하겠지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신문·방송에서 전부 성자(聖者)처럼, 헬렌 켈러처럼 만드는 게 못마땅해요.” 이 글을 보니 내 속이 다 후련해진다. 장애는 불편한 거고 극복이 안 되는 거다. 단지 장애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큰 노력을 해야 하는 걸 보통 사람들이 알 리가 없지.

 

(201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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