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전 일이었다. 뉴욕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면 가끔 어느 할머니께서 전화로 가수 허영란이 부른 날개라는 노래를 신청하였다. 할머니는 그 노래를 신청할 때마다 식물인간 상태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이 이 노래 가사처럼 벌떡 일어나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 참 가슴이 아팠는데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잃고 재활원에 드나들며 걸음마를 다시 배우고 이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날개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일어나라 아이야 / 다시 한번 걸어라 / 뛰어라 젊음이여 / 꿈을 안고 뛰어라 / 날아라 날아라 / 고뇌에 찬 인생이여 / 일어나 뛰어라 / 눕지 말고 날아라 / 어느 누가 청춘을 /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 /어느 누가 인생을 /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3개월 입원했다가 어렵게 목숨을 구하고 나서 재활원으로 이송된 첫날이었다. 입원했던 대학 병원과 재활원 간의 인수인계에 문제가 있었던지 입원 수속에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입원 수속을 하는 동안 입구의 벽에 걸린 “The Wall of Hope. (희망의 벽)” 이라는 동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평생 휠체어를 굴리며 살아야 할지도 모를 나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속을 마치고 배정된 병실로 와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젊은 아가씨가 서류 몇 장을 들고 찾아왔다. 물리치료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에 인적 사항 등을 물어가며 서류에 써넣다가 물었다. “What is your goal?” 나의 목표? 다리 하나를 잃고, 망가진 다른 다리는 뼈에 철심 여러 개를 박아서 얼기설기 엮어서 고정되어 있고, 말할 수가 없으며, 물 한 모금조차 넘기지 못하고 종일 침대에서 지내는 중환자에게 무슨 목표가 있단 말인가.
하도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I want to fly. Can I?”라고 종이에 써버렸다. 물론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기는 하지만, 빨리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걷고, 할 수만 있다면 날고 싶은 내 마음 속에 잠재된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뒤뚱뒤뚱 걷기 시작할 때 느낀 벅찬 환희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사고 후 일 년이 훨씬 지나서 일어나 걷게 되었다.
아직도 날 수는 없지만, 꿈을 안고 걷게 된 내가 자랑스럽다. 김준석 신부님은 강론에서 마르코 복음 5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숱한 고생을 하며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 ‘소녀야, 일어나라!’ (소녀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회당장에게) 치유 은사를 받은 야이로의 딸과 하혈한 여인은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인 우리들의 표상이고 결국 눈물도, 슬픔도, 고통도, 울부짖음도 없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가는 여정을 확실히 보여주는 구원의 메시지라 여겨집니다.”
투병 중인 분들 모두가 이 강론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서” 병을 떨치고 일어나 뛰게 되기를 기원한다. “탈리타 쿰!”
(2012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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