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더라

삼척감자 2024. 9. 26. 05:07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우기를 한국인은 예전부터 수부귀다남(壽富貴多男)’을 누리는 걸 가장 완전한 행복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글귀에서 나온 것인데 딸이나 아들이 결혼할 때 복을 비는 마음으로 써 준 글귀라고 한다

忠孝傳家 (충효전가)--충성과 효도로써 가문을 이어감

壽福康寧 (수복강녕)--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평안함

富貴多男 (부귀다남)--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아들이 많음

이런 행복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지금까지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내가 오래 살 수 있을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고, 가진 재산도 없어서 유언장 쓰기 쉽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도 없고, 아들은 하나도 없고 딸 둘만 있어서 수부귀다남 중에서 아직은 어느 것 하나 가진 것이 없으니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별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아파트의 관리인 호세의 아내는 늘 휠체어에 앉아서 지낸다. 당뇨로 말미암은 합병증으로 하체의 한쪽을 골반에서 다리까지 절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밖에 나올 때는 호세가 밀어주는 휠체어로 다닌다. 며칠 전 저녁에 아파트 복도에서 그들 부부를 만났는데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받았다. “혹시, 환상통으로 힘들지는 않아요?” “어쩌다 느끼지만 바로 지나가니까 견딜만해요.” “의족이 무겁지는 않아요?” “꽤 무거워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그거 얼마 들었어요?” “거의 3만 불 정도 들었는데 보험 혜택을 받아 20%만 냈어요. “보행 훈련은 얼마나 받았어요?” “여러 달 받았어요. 그것도 꽤 돈이 들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서 사회보장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6만 불이 넘는 의족을 전액 돈 주고 살 형편이 되지 않고 오랫동안 훈련을 받을 용기도 없고, 무거운 의족으로 걸을 자신도 없어서 늘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음식도 만들고 진공청소기도 조작하며 일상적인 가사를 돌볼 수 있다고 한다. 그녀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바지를 걷어 올려서 의족을 보여주며 의족과 보행 훈련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얘기하는 동안 내내 그들 부부가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 보장 혜택을 보려면 아직도 여러 해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아무래도 그녀가 걷는 걸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걸을 수만 있어도 삶이 풍요로워질 텐데. 그들이 지금 바라는 걸 뭘 까? 돈과 명예 같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고 일어나 걷는 소박한 소망일 텐데.

 

어느 날 내 블로그에 남긴 다음 글을 보고 나는 마음이 찡해졌다.

안녕하세요, 우연히 이 블로그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울산에 사는 평범한 16살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의 아버지도 지금 혼수상태에 계십니다. 몇 년 전에 혼수상태에 있으셨다가 깨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5 2일에 대학병원에 입원하셔서 지금 24일째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아버지 생각에 슬프고 힘들지만 2개월 동안의 혼수상태에서 일어나신 선생님이 저에게는 많은 위로가 되네요. 저도 아버지가 빨리 깨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고 깨어나시면 더욱 잘해 드리고 감사할 거라고 항상 느낍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들러서 좋은 글 많이 보고 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착한 학생이 있다니... 며칠 후에 이 학생이 남긴정말 부럽네요. 저희 아버지도 어서 일어나셔서 선생님처럼 이렇게 건강히 지냈으면 좋겠네요!”라는 다른 댓글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했다. 이렇게 효성 지극한 아들을 둔 그분은 쓰러질 때까지 행복한 삶을 살았으리라.

 

이 학생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두 달 만에 회복된 나의 체험담을 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듯했다. 그가 바라는 건 뭘까? 아버지가 다시 깨어나서 자식에게 말 한마디라도 건네 주는 것일 거다. 최근에 이 두 사람과 말과 글로써 대화를 나눈 후에 나는 수부귀다남인가 뭔가는 잊기로 했다. 다리 하나로 걷는 나를 이토록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어디 한둘이겠는가?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설사 걷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살아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다시 깨닫게 된다.

 

(201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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