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절단 수술 후 나는 병실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기운이 전혀 없다. 다리 쪽을 내려다보니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을 가린 침대 시트가 눈에 띈다. 왼쪽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이 푹 꺼져 있다. 난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 접니까? 오 하느님, 왜 하필이면 저냐고요? 신체 일부를 잃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이와 같을 것이다. 고통과 분노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감정도 이와 비슷하겠지만, 투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서도 잊힌다는 소외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심까지 더해진다면 그 고통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을 때도 그랬다. 입원 초기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큰 위로가 되었고 나를 위해 많은 분이 기도를 바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용기가 났다.
사고 후 두어 달이 지나자, 병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어서 평일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주일에나 가끔 성당 교우가 찾아왔다. 주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휠체어를 타고 병원 로비로 내려가 누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곤 했는데 어쩌다 온종일 아무도 찾아 주지 않으면 그렇게 허전할 수 없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는 벽에 걸린 작은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주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려 했다.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다리 하나를 잃었을 뿐 겉보기에 다른 부분은 멀쩡하고 특히 머리를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은 내가 차에 부딪히는 순간에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주신 덕분이다. 그 이후 회복기에도 마음의 동요 없이 꿋꿋하게 이겨 낸 것도 늘 주님이 지켜보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내가 다리 하나를 잃게 되었으니 억울한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지만, 재활원에서 다리를 절단한 환자나 머리를 다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과 함께 지내며 이내 체념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억울하고, 더 딱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 억울한 걸로 말하면 아무 잘못도 없이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끔찍한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밀림 속으로 가 칼 한 자루만을 주고 돌아온다. 아들은 밀림 속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한다. 맹수들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려움에 떨면서 뜬눈으로 긴긴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밤이 가고 어렴풋이 주위를 분간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가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는 ‘아하, 나는 혼자서 무서운 밤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버지가 내 옆에 함께 계셔 밤새 나를 돌보아 주었구나.’ 하고 깊이 깨닫게 된다. 그 후 아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비록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항상 자기를 지켜봐 주고 돌보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상훈 목사의 글에서 전재)
퇴원하고 나서 외래환자로 재활원에 드나들며 물리치료사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훈련을 받는 동안에 의족을 맞추려고 찾아간 회사의 직원이 읽어보라며 준 책의 제목이 바로 “You Are Not Alone.”이었다. 사고나 병으로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낸 감동적인 체험담을 모은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많은 용기를 얻었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의 제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나 혼자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고, 하느님이 항상 나를 지켜봐 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투병 중인 신자들을 성당에 모시고 치유 예절을 드린 후에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식사 후에 참석한 분들이 각자의 체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투병에 따르는 육체적인 고통, 두려움 그리고 희망에 대한 얘기와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얘기를 들었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더니 역시 그 말이 맞는가 보다. 모임을 마치고 떠나는 분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으니 말이다.
(2012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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