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05년 6월 27일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과 사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다가 하느님 나라로 가기에는 때가 일렀던지 이 세상에 다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5년이 흘렀을 뿐이다.
매일 밤,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마음이 바빴었는데 다시 살아나서 여러 해가 지나니 이제는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 오늘이 어쩌면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는데 고맙게도 다시 태어난 날이 되었다. 생과 사가 내 뜻대로가 아니고 모두 우리 주님이 주관하심을 환갑이 지나 어렴풋이 깨달았으니 뒤늦게 철이 들어가는 걸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행복이야 내 믿음으로는 가늠할 길 없지만, 다시 살아나서 대하는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6개월 동안 거의 매 주일 문병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준 여러 교우, 나를 위해 묵주의 기도 1,000단을 바쳐 주신 어느 신부님, 많은 기도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많은 도움 주시고 기도해 주신 형제님들과 자매님들, 또 자주 병실을 찾아와 기도해 주시던 이름 모르는 미국인 신부님들을 생각하며 감사 기도를 드린다. 내 믿음이라야 보잘것없어서 구원받기에는 너무 부족한데도 내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은,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백인대장처럼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많은 기도를 바쳐주신 은인들의 믿음 덕분이다. 생각하면 주님과 은인들에게 입은 은혜는 한없이 커서 보답할 길이 없을 듯하다.
‘평화로운 일상 한 해의 봄 하루 중 아침 7시 언덕에는 진주 이슬 맺히고 종달새는 날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Spring Song에 나오는 구절이다. 시인은 질서와 평화란 세상 만물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 한 해의 시작인 봄, 하루의 시작인 아침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모든 일상이 평범하게 조용히 흘러가면 평화로운 것이고, 그게 바로 행복인 데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이 생겨서 일상의 평화가 깨어지고 나서야 이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사고로 일상이 망가지고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게 바로 5년 전 오늘, 6월 27일이었다.
사고 후 6개월이 지나서 퇴원하고는 아침에 동이 틀 때마다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됨을 경이로워하며 가슴이 뛰곤 했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을 맞을 때마다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며 하루 더 살 수 있음을 고마워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쌓여서 어느덧 5년 세월이 지나 환갑, 진갑까지 지냈음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사고 후 병원에 있는 동안은 평생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려니 생각하며 절망했었다.
재활원으로 옮겨진 후 어느 날 휠체어에 앉아 바퀴를 굴리는 연습을 하며 이제부터는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고 희망을 품게 된 날을 잊을 수 없다. 의족을 끼고 워커를 짚고 처음으로 뒤뚱뒤뚱 걸으며 기뻐한 날도 잊을 수 없다. 양손에 클러치를 짚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조심조심 걸으며 가슴 벅찼던 날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사고가 난 지 5년이 지나서 모든 일상이 평화로움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음도 감사드린다. 부디 하느님의 자비로, 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건강을 되찾으시고 모든 분의 일상이 늘 평화롭기를 기원한다.
(2010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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