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달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무렵이었다. 의식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꿈이 생시 같고, 생시가 꿈같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꿈에서 막 깨어났는데 마침 신부님이 방문하였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던지 꿈에서 뭘 보았는지 물어보기에 당시에 성대가 손상되어 말할 수 없던 나는 글 쓰는 판을 달래서 ‘연옥’, ‘토론’, ‘있음’이라고 썼다. 바로 잊을 뻔한 꿈이 아직도 생각나는 건 때맞춰서 방문한 신부님 덕분이다.
꿈에서 낯선 사람 둘이 연옥이 있다거니, 없다거니 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연옥이 있다는 사람이 토론에서 이기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는데, 연옥이 없다는 사람이 논리적으로 밀리는 걸 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즐거워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생사를 오가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리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꿈을 꾼 걸 보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연옥에 대한 확신이 없었나 보다.
마카베오기 하권 12장 43절 이하에 보면, 유다가 죄를 지은 채 죽은 자기 부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제물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도록 하고 있다. 또 바울로는 티모테오서 2권 1장 18절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오네시포로를 위해 "주님께서 그날에 그가 주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게 해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한다. 이처럼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바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대상으로 하며, 그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하느님을 직접 뵙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청할 수 있다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알고 있던 나지만 죽음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사람의 죽음에 관여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동양과 서양 어디에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국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매우 인간적이다. 죽은 이의 사정도 봐주어서 며칠 정도 기다려 주거나 저승에 가기 전에 이승에서 못다 한 일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을 쓰고 있는데 저승의 공무원 신분인지 서류 절차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명부와 붓을 갖고 다니고, 가끔 실수를 저질러 엉뚱한 사람을 잘못 데려가기도 한다. 저승사자한테 뇌물을 주고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걸 보면 부패 공무원 닮은 저승사자도 있나 보다.
핼로윈이 다가오면 늘 등장하는 서양의 저승사자인 그림 리퍼(Grim Reaper)는 항상 큰 낫을 갖고 다니며 영혼과 육체를 잇는 줄을 낫으로 베어서 영혼을 데려간다고 하니 한국의 저승사자에 비해 매우 흉포하고 공격적이다. 이 저승사자는 해골 얼굴에 체구보다 좀 큰 로브를 입는데, 미국에 오래 산 분들은 그림이나 영화로 많이 보았을 것이다.
15세기부터 유럽 사람들은 사신(死神)이 사람을 유혹해서 데려간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유명한 화가나 시인들의 작품에 사신이 사람을 데려가려고 유혹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오늘 우연히 듣게 된 슈베르트의 “사신과 아가씨”라는 작품도 슈베르트가 나이 스물에 Matthias Claudius의 시에서 주제를 택해서 작곡했다고 하는데, 시는 ‘사신에게 자기를 떠나라고 애원하는 아가씨와, 그 아가씨를 유혹하는 사신과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앙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예로부터 위와 같은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두려워했기에 죽음 앞에서 불안에 떨고 절망한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죽음이 새롭고 영원한 삶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모든 것을 허무로 바꾸는 죽음마저도 물리치실 수 있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로써 확인되었다고 가톨릭교회는 믿는다.
(201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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