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천국에서의 90분(90 Minutes in Heaven)”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단 파이퍼(Don Piper)라는 목사가 교통사고 직후의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쓴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인데, 줄거리를 읽어보고 천국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영화를 보게 된 게 아니라 교통사고라는 단어에 끌렸다. 그가 겪은 고통이 나 자신의 체험과 어쩐지 비슷할 것 같아서였다.
오래전에 직장 동료의 권유로 자칭 목사라는 펄시 콜레가 쓴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로는 이런 종류의 책이나 영화에 흥미를 많이 잃어버렸다. 그가 다녀왔다는 천국은 도로가 빛나는 금으로 덮여 있었고, 자신이 들어가 살 아파트는 황금으로 지어져 있었고, 큰 성은 보석으로 장식되었더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새빨간 거짓인 것 같아서였다. 어째 이 영화도 그렇고 그런 진부한 얘기일 거라는 선입관을 가졌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1989년 1월 18일에 침례교 목사 단 파이퍼는 텍사스주에서 열린 목회자 회의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의 승용차가 죄수 호송 트럭과 충돌하고, 그 사고로 가슴과 양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는 사고 현장에서 바로 숨졌다. 그 자리에 바로 구급 의료요원이 도착했는데, 그들은 파이퍼 목사가 죽은 걸 확인하고는 큰 방수포로 차를 덮어씌워 놓고 검시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다른 목사가 지나가다가 의료 요원의 허락을 받고 방수포 일부를 벗기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울먹이며 찬송가를 부르는데 갑자기 죽은 이가 찬송가를 따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숨진 지 90분 만에 그가 다시 살아난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파이퍼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숨진 후 바로 천국으로 가서 놀랍고도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증조할머니를 비롯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만나고 천상 성가대를 따라서 천국 문으로 행진하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살아나고 몇 달 동안 입원 중에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열망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버리고 의료진의 도움과 친지들의 문병을 거부하기도 하였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그를 아끼는 친구와 그가 존경하는 원로 목사의 설득으로 의료진의 치료에 협조하고 재활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와 비슷한 사고를 겪고,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다시 살아나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걷게 된 나는 그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환상통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혼수상태에 깨어나서 겪은 그 끔찍한 고통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퇴원하고 집에서 휠체어 신세를 지던 어느 날, 그는 문병 온 절친한 목사에게 자신의 체험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죽어 있던 90분 동안에 나는 천국에 다녀 왔다네.”
“그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는가?”
“아니 자네에게 처음으로 하는 걸세.”
“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았고, 이 신비스러운 체험을 혼자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네.”
나도 사고 후 두 달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의 기억이 몇 가지 있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장기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숨이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었고, 혼수상태에서 뭔가를 보았다고는 하지만, 그 상태에서 꾼 꿈을 몇 가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걸 임사체험이라고 믿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섣불리 얘기했다가 나만 우스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꿈 이야기라고 치자.
혼수상태에서 나는 늘 혼자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도, 친구도 보이지 않고 늘 혼자였다. 야생화가 가득 핀 고향 앞산같이 아름다운 산을 여러 번 거닐기도 했고, 키 큰 나무와 풀이 가득한 산을 허위허위 오르기도 했다. 거룩한 분들이나 조상들을 만나지도 못했고, 천상 음악을 듣지도 못했는데 이런 걸 두고 천국을 보고 왔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혼수상태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이 가끔 생생하게 떠오른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기간 입원 중에 작은딸이 사주어서 읽게 된 미치 엘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팔십 평생을 놀이공원의 정비공으로 살아온 주인공 에드워드(에디)는 어느 날 사고로 죽는다. 젊을 때는 전쟁에 참전하여 다쳤고, 50대에는 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온 노인이다. 그는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만나는데, 에디가 생전에 만난 사람도 있고,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에디는 그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으며, 그가 안고 살아야 했던 상처와도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끄는 대로 에디는 과거와 감정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자신이 상처를 입혔던 사람, 그 때문에 목숨까지 잃은 사람도 만난다. 그들과 만난 후에 자기 삶에서 단단히 맺혀 있던 아픔 덩어리가 풀리는 순간 그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과 화해한다. (공경희의 번역 후기에서 인용)
임사체험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린 천국이지만, 나는 이런 천국이 마음에 든다. 나의 삶을 이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게 되는 그런 곳이 천국이라면 나는 천국에 가고 싶다. 나 자신은 물론 이웃과 화해할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어쩌면 천국일 수도 있겠지.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양쪽 다리에 교정용 기구를 부착한 채 휠체어를 타고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 사고 후 처음으로 방문한 날,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에 신자들은 뒤쪽에 앉은 그에게 소감을 말해달라고 청했다. 힘겹게 일어나서 그는 딱 두 문장만 말하고 바로 앉았다.
“You prayed.”
“I am here.”
사고 후 10년이 지났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해 고마움을 늘 간직하며 살고자 하는 나에게는 이 대사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내 식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 대사는 내가 늘 가슴 속에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2015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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