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주일 아침 일찍 친척 어른들 두어 분과 함께 먼 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버지와 같은 항렬인 친척 아저씨가 토지 문제로 분쟁이 생겼는데 평생 농사만 짓던 분이라 세상 물정에 어두워 펜대라도 잡아 본 아버지의 도움을 청한 것이다. 현지에 가서 지적도와 실제 토지를 비교해 보고 농토의 일부를 무단 사용하던 사람에게서 소작료를 받아내려고 작정한 그 아저씨의 뒤를 따라 길을 떠났다.
강원도 시골에서 자라서 일 이십 리 거리야 늘 걸어 다녔고 산을 탈 일도 잦았지만, 왕복 여덟 시간 거리는 어린 소년에게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이 걷다 보니 저절로 생겨난 듯한 산길은 두 사람이 비켜서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았고 가도 가도 키 작은 소나무만 드문드문 보일 뿐 온통 붉은 흙이 드러난 산길을 걷기란 정말 고역이었다. 집 떠나 네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척박한 밭은 정말 보잘것없었다. 어쩌다 친척 어른댁에서 그런 두메산골에 땅을 마련해 두었던 지 모르겠지만, 그 땅 덕분에 먼 거리를 걸은 추억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회사 등산 동호회원들이나 관광회사에서 운영하는 하루 등산 코스를 이용하여 잊지 않을 정도로 산을 탔지만, 특별히 등산이나 걷기를 즐겼기 때문은 아니었다. 산에 가면 강원도 산골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고, 정상에 올라 먹는 돼지비계를 썰어 넣어서 끓인 김치찌개 맛이 기막히게 좋아서 철 따라 단체 등산객에 묻어서 산에 올랐다.
오래전에 유명한 무전 여행가 김찬삼 씨나 오지 여행가 한비야 씨의 여행기를 읽고는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막연히 도보여행을 동경하기는 했지만, 먹고 살기가 바빴을뿐만 아니라 용기도 없는 꽁생원이라 그들처럼 선뜻 길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은퇴하면 캠핑을 하며 미국 곳곳을 누벼 보고 싶은 소망은 있었다. 그것도 어려우면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해보았으면 했다. 걸을 수 있을 때는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꾸었지만,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은 후에는 그런 꿈도 꿀 수 없으니 서글프기만 하다.
핑곗거리야 많다. 등산을 원 없이 못 한 건 전세버스로 오가는 도중에 갖는 여흥시간에 노래를 시키는 게 참 싫어서였다. 애국가도 제대로 못 부르는 음치의 괴로움을 누가 알아 줄까? 반 강제로 노래를 시키는 사회자가 그때는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런 게 싫었으면 혼자서라도 배낭을 짊어지고 열심히 등산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미국에서 먹고살기가 바빴더라도 대중교통수단을 적절히 활용하여 단기간의 도보여행을 할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것도 자주 즐길 수는 있었을 텐데. 도보여행이든 등산이든 뭐든 생각났을 때 했어야 했는데 나처럼 다리를 잃고나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DO IT NOW!”라는 세 단어짜리 문장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에 어느 교우의 권유로 보게 된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여자의 자전적 영화인 와일드(Wild)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결혼 실패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주인공은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여러 해 동안 마약 중독, 난잡한 성생활 등의 무절제하고 자기 파괴적인 생활을 한 끝에 무모한 결심을 한다.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오로지 충동에 이끌려서 그녀는 90일 동안 모하비 사막부터 워싱턴주 끝까지 1100마일 (1760km)에 이르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걷는다. 그 도보여행을 통해 그녀는 극한 상황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광기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고통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마침내는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아픔을 비로서 직시하고 털어내며 치유된다.”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게 참 부러웠다. 두 다리 멀쩡할 때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그리 감동하지 않았을 텐데, 마음대로 걸을 수 없으니 더욱 감동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랜 세월 불교 신자로 지내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5년이 지나도록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800km거리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홀로 걷고나니 비로서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옛 직장동료 박스테파노 형제가 생각났다.
무릎이 상해서 도저히 도보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 가족의 반대가 심했지만, 고집을 부려서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까지 걸었다는 김베드로 형제도 생각났다. 순례를 마치고 무릎의 상태가 악화하여 수술해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행복해 하는 그가 참 부러웠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세상 끝까지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 부러워졌다. 에이, 나도 두 다리 멀쩡할 때 만사 젖혀두고 산티아고 순례나 다녀왔어야 했는데.
(2015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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