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불의 사나이’란 유명한 미국 드라마가 있다. 우주 조종사로 일하다 사고로 팔, 다리 그리고 눈을 잃은 주인공이 생체공학 수술을 받고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인간이 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의 수술비용으로 600만 달러가 들었다고 ‘600만 불의 사나이’란 제목이 붙여졌다고 한다. 드라마가 제작된 게 70년대 후반이니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지금 화폐 가치로는 2,400만 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 돈을 들인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 및 의료 수준으로는 아직 그런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 및 치료에 든 비용을 그간의 물가 상승률을 따져 지금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거의 300만 불이 되니 나도 적지 않은 의료비를 썼지만, 초인적인 능력은커녕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갖은 고생을 겪고도 온전치 못한 몸이 되어 버렸으니 공상 과학 드라마와 현실은 그렇게 다르다.
쌍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 나를 보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지팡이가 필요해요? 의족을 끼고 달리기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요즘은 의족이 워낙 좋아서 지체 장애인들도 의족만 끼면 불편 없이 살 수 있다던데요.”
600만 불의 사나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상상 속의 인물이나 매스컴에서 가끔 대하는 육상 선수 못지 않은 장애인과 현실에서 대하는 지체 절단 장애인은 매우 사정이 다르다. 다들 뭘 모르고 하는 말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하다.
지체를 절단하면 몸의 다른 부위에서 피부를 떼어 내어 그 부위에 이식해야 하는데 이식된 부위는 상하기 쉬워서 관리를 잘 해주어도 짓무르고, 상처가 나서 아플 때가 잦다. 때로는 환상통 때문에 그 부위가 찌릿거려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초인적인 노력 끝에 의족을 끼고도 격렬한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장애인도 이런 점에서는 나보다 사정이 그리 나을 것 같지 않다. 의족을 끼고 지낸다고 해도 정상적인 삶은커녕 산다는 게 매우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데 경제적인 어려움마저 겪어야 한다.
다리 절단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의족의 가격은 상상외로 비싸다. 쓸만한 의족은 5만 불~7만 불이며, 운동선수용 의족은 대개 10만 불이 넘는다고 한다. 대체로 3년~5년 마다 새로 사야 하는 의족 구입비와 걷는 훈련을 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으므로 일상생활을 큰 불편 없이 하며 살아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 보험이 없으면 전액 자비로 의족을 사야 하고, 보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2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보험회사에서는 약관에 따라 기능이 단순한 값싼 의족 구매만 승인해 준다. 보험회사도 돈 안되는 계약을 맺을 이유가 없을 테니 그들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퇴원 후 개인 보험에서 구매 승인한 의족은 $12,000짜리였다. 값싼 물건이라서 그런지 보기에도 단순하고, 최소한의 기능만 갖추고 있어서 연습을 많이 한 후에 본격적으로 사용했는데도 걸을 때마다 마치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이 의족을 착용하고 걸을 때는 땅바닥만 내려다 보고 조심스럽게 걷는데도 발자국을 뗄 때마다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혜택을 받게 되어서 기능이 더 나은 의족을 살 때 승인받은 것은 $25,000 짜린데, 이 의족을 끼고 걸으면 훨씬 편안하고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지만, 여전히 쌍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정기 점검을 받으려고 작년에 만난 의족전문의는 더 비싼 의족으로 업그레이드 하라고 권했지만,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거부했다. 글쎄 그 전문의도 돈을 벌어야 할 테고, 나도 7만 불짜리를 사용하면 더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걸 신어도 쌍지팡이의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한다니 약간의 성능 향상을 위해 막대한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의족을 낄 때마다 다리에 우선 길죽한 콘돔처럼 생긴 실리콘 재질의 라이너를 스타킹 신듯이 신어야 한다. 이 물건은 다리에 밀착하여 다리가 의족에 직접 닿지 않게 함으로써 피부를 보호해 준다. 라이너 아랫 부분을 빙 돌아가며 돌기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 돌기는 의족 내부의 공기를 밀어내어 진공상태로 만들어서 의족이 다리에서 빠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기능상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본체와 연결된 부분이 잘 찢어지는 게 문제다. 조심스럽게 사용해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찢어지니 그때마다 새것으로 교체해 줘야 하지만, 보험 없이 사면 한 개에 $2,000이고 보험이 있어도 $400은 줘야 하니 참 감당하기 어렵다.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기가 찢어지기 시작하면 무척 속이 상한다.
얼마 전에 지체 절단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포럼에 들어가 보았더니 도움을 호소하는 글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다. 의족 수리비로 $500을 지원해 달라는 글부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70,000짜리 의족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호소까지 갖가지 글이 올라와 있었다. 정상인에 비해 아무래도 수입이 적은 장애인에게는 의족 구매와 관리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이 든다. 대량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라 비쌀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나처럼 값싼 의족을 사용하는 사람도 두 개에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을 썼는데, 골반까지 절단하여 어쩔 수 없이 벤츠 한 대 값에 해당하는 비싼 의족을 사용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 돈을 어찌 다 감당할까?
어쨌거나 나는 몸에 엄청난 투자를 했으니 무척 비싼 몸이다. 비싼 몸은 아닐지라도 귀한 몸이 되었어야 했는데.
(2014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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